롯데면세점에서 일하는 박상섭(43) 팀장은 올 3월부터 6개월 동안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주 4일만 일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의 주 4일 근무제는 역설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시작됐다. 면세업계가 전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데다, 방역을 위해 사원 간 접촉을 최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월급은 10%가량 줄어들었지만 박 팀장과 주변 사원들의 만족도는 높다. “일주일 4일 일하고 3일 쉬어보니 좋더라”는 것이다. 박 팀장은 “최근 코로나로 학교도 안 가는 초등학생·유치원생 자녀 두 명을 매일 부모님께 맡기는 게 죄송스러웠다”며 “하루라도 부모가 더 돌볼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계기가 돼, 직장인의 로망으로만 통하던 주 4일 근무제를 예기치 않게 본격 논의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코로나 직격타를 맞은 여행·호텔·면세점·항공사 등 일부 업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국내 대기업 4곳 중 3곳꼴로 유연근무제(재택·원격근무 및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는데, ‘주 40시간만 일하면 어디서 언제 일하는지 따지지 말자’는 문화를 실험하는 곳이 늘고 있다. 멀게만 보였던 주 4일 근무 시대가 갑자기 닥친 분위기다.

◇코로나 팬데믹 속 유연근무제 확산… ‘주 4 시대’ 곧 올까?

올해 주4 근무제를 먼저 도입한 건 코로나 직격타를 맞은 여행·면세점·호텔·항공 업계였다. 하지만 코로나 방역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삼성전자, 엔씨소프트도 제한적인 주 4일 근무를 허용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5월 육아 부담이 큰 임직원에 한해 주 4일 근무 신청을 받았고, 엔씨소프트는 4월 한 달 전 직원의 재택근무를 자율화하면서 일주일 중 하루를 유급휴가로 돌렸다. 엔씨소프트 김은미 홍보팀장은 “사무실 근무밀도를 줄이고 안전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4월 한 달간 한시적으로 주4일제를 운영했다”며 “직원들이 업무 스케줄에 따라 하루씩 일을 쉬는 방법을 통해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하는 등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김영석

SK의 경우 코로나 이전부터 그룹사 차원에서 주 4일 근무제도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실험 중이다. 급여 조정이나 휴일 숫자 자체보다는 근무시간 내 집중도나 효율을 높이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작년 초 SK홀딩스가 한 달 두 차례 ‘집중근무제’라는 이름 아래 금요일 휴무 선택지를 주면서 시작했다. 올 초 SK텔레콤이 배턴을 이어받았다.

◇"일 잘될 때 집중하고 확실히 쉬자" VS “주중 격무만 부추겨”

우연찮은 기회로 주 4일제를 해본 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일단 상상만 했을 땐 좋게 느껴지는 건 맞는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온라인으로 조사(670명)했을 땐 ‘주 4일 근무가 가장 적당하다’는 응답이 83%를 차지했다. 실제 대기업 관광 관련 계열사에 근무 중인 김모(30) 대리는 “은행이나 병원 다니기도 편하고 자격증 공부나 취미생활 같은 자기 계발에 쓸 시간도 늘었다”고 했다. 월요일 1시 출근으로 주 4.5일 근무제를 시행 중인 우아한형제들의 이태경(36) 팀장은 "매주 월요일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데려다 줄 수 있고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올해 처음 주 4일제를 경험한 직원들 중엔 부정적 의견도 적지 않았다. 주 40시간 기준이 바뀌지 않는데 4일 동안 나눠 일하니 일하는 날은 너무 힘겹고, 사회 전체적으로 주 4일제가 도입되지 않는 이상 거래처 등과 연락이 엇갈려 업무 공백이 생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론 급여가 줄어든다는 점이 부정적 요인으로 꼽혔다. SK 계열사에 근무 중인 김모(41)씨는 “주 4일이 도입돼도 일의 총량은 줄지 않기 때문에 주중 업무 강도가 굉장히 세졌다. 급여 감소도 우려된다”고 했다. 엔씨소프트 이모(31)씨는 “주 4일제 도입 기간에도 실제론 주 5일 풀타임으로 일하는 부서가 있었다. 사회 전반이 주 5일제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회사만 주4일 근무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일러스트=김영석

같은 직장에서 같은 제도를 경험해도 세대에 따라 반응이 갈리기도 한다. SK텔레콤의 대리 이모(30)씨는 “주 4일 근무제를 한번 경험해보니 ‘사람이 정말 일주일 7일 중 5일을 일해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라고 했다. “일이 잘될 때 열심히 하고 3일간 푹 쉴 수도 있으니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모(48) 부장은 ‘주 4일 근무 상시화’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주 6일제에서 5일제로 순식간에 바뀐 경험이 있긴 하지만…. 한 주에 4일 일하고 3일 쉬자? 이건 그냥 놀자는 것 아닌가요? 제가 너무 ‘꼰대’라서 그런가?”

◇주 4 시대에 맞는 내 월급은?

관건은 결국 ‘워라밸’(일과 휴식의 균형)과 ‘월급’의 밸런스다. 중소기업이 최근 많이 도입하는 주 4일 근무제의 궁극적인 목표는 일의 효율보다는 ‘인건비 절감’인 것이 사실이다. 지방 건설 대기업 하도급 회사에서 일하는 남모(28)씨는 “이미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데 월급 20%를 줄이고 주 4일 근무를 하자면서 동의서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며 “최저임금에서 20%를 줄이면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주 4일 근무제가 한국보다 앞서 논의된 해외 선진국에서도 4일제가 쉽게 정착되지는 않는 상황이다. 코로나로 실업률이 높아지자 유럽 최대 노조인 독일 금속노조가 먼저 임금 조정을 받아들이는 대신 ‘주 4일·30시간 근무제’를 제안한 게 대표적이다. 근무 시간과 급여를 줄이는 대신 고용을 유지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사측은 ‘차라리 해고를 쉽게 하자’며 아직 노조와 합의를 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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