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이 기다렸던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지난 2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테슬라 공장에 난해한 문양의 검은 셔츠를 입고 나타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교주처럼, 2시간에 걸친 ‘배터리 쇼'를 선보였습니다. 그의 발표는 ‘3년 내 테슬라표 반값 배터리’와 ‘한 달 내 완전 자율주행차’로 요약됩니다. 머스크의 현란한 프레젠테이션 속에, 투자자가 놓친 ‘알짜 정보’가 숨어 있진 않았을까요. Mint가 머스크의 발언을 중심으로, ‘테슬라표 배터리의 진실’을 다섯 문답으로 풀어봤습니다.
◇Q1. 테슬라표 배터리, 뭐가 결정적으로 다르죠?
“상당히 난해해서 뭔지 몰랐을 거다.” -일론 머스크
머스크는 자신의 티셔츠를 가리키며 “뭔지 몰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뭘까요? 깨진 기왓장처럼 보이는 이 문양은 사실 이번에 테슬라가 발표한 새 배터리의 단면 스케치입니다.
새로 발표한 배터리 이름은 ’4680′. 작은 깡통처럼 보이는 원통형입니다. 전기차용 배터리 모양은 원통형·각형·파우치형으로 세 가지로 나뉩니다. 이중 대부분 전기차가 쓰는 원통형은 양극(+)·음극(–)·분리막 등 배터리 소재를 얹은 포일을 돌돌 말아 넣은 형태입니다. 제조 공정이 간편해 셋 중에 ‘가성비’가 가장 좋습니다. 단점은 두루마리처럼 돌돌 만 건전지를 보호하려면 배터리 하나하나를 단단한 캔 안에 넣어야 해서 좀 무겁다는 겁니다.
테슬라엔 이런 원통형 배터리 수천개가 장착됩니다. 새로 개발했다는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보다 통통해졌습니다. 지름 21㎜·높이 70㎜를 지름 46㎜·높이 80㎜로 바꿨습니다. (배터리 이름은 지름<46>과 높이<80>를 따서 만들었습니다.) 배터리가 커지면 개당 에너지 용량은 늘어나고, 생산 단가는 줄어듭니다. 또 더 적은 개수의 배터리를 써도 되니 포장하는 캔은 덜 필요합니다. 무게도 가벼워지겠죠.
◇Q2. '탭'을 없앴다는데, 왜 그게 중요하죠?
“저 망할놈의 탭을 없애느라 골치 좀 썩었지.” -일론 머스크
탭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우선 배터리의 기본 원리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전기자동차에는 모두 리튬(Li)이온 배터리가 들어갑니다. 배터리 내부에선 양극과 음극 사이를 리튬이온이 왔다 갔다 하면서 충·방전이 이뤄집니다. 배터리 전력을 쓸 때는 리튬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갑니다. 반대로 충전할 때는 양극에서 음극으로 갑니다. 양극의 리튬이온을 전부 음극으로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배터리 충전 시간’입니다.
리튬이온이 오갈 때 분리된 전자(–)는 '탭'을 따라 이동하면서 전기를 발생시킵니다. 3겹 포일을 돌돌 만, 두루마리처럼 생긴 배터리를 펼쳐보면 포일 한가운데 직사각형의 얇은 알루미늄 막대가 붙어 있습니다. 전자가 이동하는 도로 탭(tab)입니다. 테슬라는 이 탭을 없애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이번에 발표했습니다. 포일에 기와 지붕 모양의 레이저 패턴을 새기는 방식이라는데 구체적인 과정은 ‘영업 비밀’이라고 하고요. 탭이 없어지면 그만큼 배터리 제조 과정이 간단해집니다. 배터리 자체의 구조도 간결해지고요.
테슬라는 새로운 배터리 규격, 제조 공정 및 전극·설계 개선 등을 통해 배터리 제조 원가를 56% 절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주행 거리는 54% 길어집니다.
◇Q3. 왜 머스크는 배터리 가격에 집착할까요?
“여러분, 니켈을 빨리 많이 생산해주세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전기차 평균 가격은 약 6500만원입니다. 현대차 평균 단가(3340만원)의 두 배 수준으로 비쌉니다. 왜 그럴까요? 배터리 가격이 비싸기 때문입니다. 배터리 값이 단가의 40%를 넘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테슬라 전기차는 굴러다니는 고성능 컴퓨터라 일컬어집니다. 이 컴퓨터를 제어하려면 그만큼 많은 전기가 필요합니다. 테슬라는 배터리 가격을 떨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머스크는 이날 배터리 안 포일 소재 중 하나인 코발트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는데 이 역시 비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즘 배터리는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등을 섞어서 만듭니다. 이 중 니켈은 배터리의 출력에, 코발트는 배터리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코발트는 가격도 비싸지만 콩코 코발트 광산에서 아동 학대, 난개발로 인한 환경 오염 등 논란이 끊이지 않는 소재입니다. 니켈은 코발트보다는 흔합니다. 다만 코발트보다 좀 안정적이 않다는 단점이 있었는데요, 테슬라는 니켈에 ‘독창적 가공’을 함으로써 안정성을 끌어올렸다고 말합니다. 머스크는 이제 코발트 없이도 충분히 안전하면서, 가격마저 더 저렴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입니다.
◇Q4. 배터리 기술은 왜 발전이 더딘가요?
“새 배터리 양산에는 3년 걸릴 것.” -일론 머스크
머스크는 배터리 청사진을 내놓으며 ‘3년’이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많은 투자자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배터리 공장을 짓는 데 걸리는 시간(보통 2년여)이 있으니 그리 길지 않다 볼 수도 있지만, 1년에 두 배씩 성능이 증가하던 반도체 산업과 비교하면 왠지 배터리의 발전 속도는 한참 더뎌 보입니다.
반도체나 배터리나 더 작게, 더 고성능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반도체와 달리 배터리 안에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있습니다. 이 물질들이 배터리 안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반응을 일으킵니다. 한 번에 수십 가지가 동시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또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막이 손상되면 폭발 같은 심각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배터리는 크기를 함부로 줄이거나 구부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전고체(全固體) 배터리’는 음극과 양극을 오갈 때 통행로 역할을 하는 ‘전해질’을 지금의 액체에서 더 단단한 고체로 바꾼 배터리를 뜻합니다. 배터리의 최대 위험인 ‘폭발 가능성’을 없앨 수 있는 기술이지만, 전해질 역할을 할 새로운 최적 배합의 화학물질이 나와줘야 합니다. 액체 전해질만큼 리튬이온이 빠르게 오가면서도 불에 타지 않는 물질 말이죠.
사실 투자자들은 이번 배터리 데이에 머스크의 입에서 ‘전고체’가 나오길 기대했지만, 그런 소식은 없었습니다. 배터리 데이 이후 테슬라 주가가 다소 하락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Q5. 국내 배터리 기업에 영향은요?
“LG화학으로부터 배터리 계속 사겠다.” -일론 머스크
머스크는 배터리 데이에도 배터리 점유율 1위인 LG화학 등 기존 협력사로부터 당분간 배터리를 계속 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호재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머스크는 이날 조만간 테슬라도 배터리를 만들겠다고 밝혔고, 가격도 낮추겠다 했습니다. “나는 배터리 가격을 56% 줄여, 2900만원짜리 전기차를 만들 거야.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와봐”라는 것이죠. 기존 업체도 지금까지 팔던 배터리의 가격을 낮추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다행인 건 테슬라의 기준을 맞춰줄 만한 업체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한국의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이 여기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연간 50만대 정도 생산하던 테슬라는 2030년까지 연간 2000만대를 생산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파이’가 커지면 한국 업체에 유리하겠지만 테슬라가 직접 배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 부담입니다.
도움말 주신 분: 이상영·조재필 유니스트 에너지공학과 교수,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손지우 SK증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