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정모(34)씨는 내년 결혼을 앞두고 서울에 신혼 전셋집을 알아보던 중 직장 동료와 말다툼을 벌였다. 팀원끼리 점심을 먹던 도중, 최근 ‘영끌’해 서울에 5억원대 소형 아파트를 마련한 후배가 “신축 전세 찾다가 경기도 신도시로 밀려나면 인생 종친다”고 한 말에 발끈한 것이다. 그는 “정부의 8·4 대책 이후로 전세가 씨가 말라 가뜩이나 스트레스 받는데 후배까지 저렇게 비아냥대니 순간 화가 났다”고 했다.
현 정권 들어 서울과 수도권 집값이 폭등하면서 부동산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어나고 있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정권 출범 직후(2017년 5월) 6억634만원에서 지난달 9억2152만원까지 올랐다. 본지가 비즈니스 포털 서비스 리멤버와 함께 최근 직장인 41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1.9%가 ‘부동산 때문에 근로의욕이 (매우) 떨어진다’고 답했다.
서울 강남의 한 중견기업에 다니는 최모(29)씨는 얼마전 ‘갭투자 고수’로 소문난 부서 대리 선배에게 “투자 비법을 전수해달라”며 치맥을 사겠다고 했다. 최씨는 “입사 초반엔 저 선배가 매번 일 못한다고 혼나길래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는데, 요새 사람이 달라보인다”고 했다. 그동안 직장에서 성공의 척도는 일을 잘해 승진하고, 두루두루 인간관계를 잘 쌓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부동산 폭등이 이마저 바꿔놨다. ‘직장서 두 선배중 누굴 더 존경하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 57%가 ‘사무실서 존재감은 없지만 알고보니 다주택 건물주인 과장님’을 골랐다. ‘업무능력과 성품까지 완벽하지만 알고보니 무주택 부장님’은 18.8%에 그쳤다. ‘직(職)보단 집’이라는 가치관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10년차 직장인 김모(여·35)씨는 “존경하던 부사장님이 무주택자였다는걸 알고 나서는 측은지심이 들더라”고 했다.
정부는 그동안 집값을 잡겠다며 23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나오는 대책에 적지않은 직장인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발표가 업무에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0.2%가 ‘정책이 나올때마다 분석하느라 업무에 지장을 준다’고 했다. 흥미로운 점은, 무주택자보다 유주택자들이 정부 정책에 민감했다는 것이다. 무주택자 중 26.6%만 ‘업무에 지장 있다’고 답한 반면, 유주택자는 54.3%였다. 서울 상계동 아파트를 전세 주고 있는 안모(37)씨는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면서 세입자 전세 연장 문제를 해결하느라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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