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AI) 가속기 ‘루빈(Rubin)’의 출시가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4)의 공급과 전력·발열 등에서 기술적 문제가 불거진 탓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루빈 출시 지연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HBM 경쟁을 벌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출시 예정인 루빈의 출하 시점이 지연될 수 있다고 8일 밝혔다. HBM4 검증에 시간이 드는 것뿐 아니라, 네트워크 칩 변경, 전력 소비 관리, 액체 냉각 환경에서의 성능 최적화 등 여러 분야에서 기술적 과제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트렌드포스는 올해 엔비디아의 고급 그래픽처리장치(GPU)에서 루빈이 차지하는 비율을 29%에서 22%로 하향했다. 루빈 출시 지연 여파로 현재 활발히 사용되는 AI 가속기 블랙웰 비율은 61%에서 71%로 상향됐다.
앞서 미국 투자은행 키뱅크 역시 루빈 양산 지연이 우려된다며, 엔비디아가 올해 루빈 생산 목표를 200만개에서 150만개로 하향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HBM4 검증이 지연되고 있는 여파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업계 최초로 HBM4를 양산 출하했다고 밝혔지만,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아직 엔비디아의 검증 절차를 거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SK하이닉스 수익성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루빈에는 HBM4가, 블랙웰에는 이전 5세대 HBM3E가 탑재된다. 원래도 올해 HBM4보다 HBM3E의 매출 비중이 클 것이라는 전망은 나왔지만, 루빈 출하가 지연되면 HBM3E가 더 오래 많이 팔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HBM3E는 SK하이닉스가 대부분 물량을 공급하고 있다.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엔비디아 루빈의 대량 출하 시점 지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SK하이닉스의 HBM3E 주도권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