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에 사실상 합의한 가운데 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지수, 삼성전자 주가, SK하이닉스 주가 등이 표시돼 있다./연합뉴스

8일 삼성전자 주가는 7% 넘게 급등하면서 21만원을 넘었다. 미국·이란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12.8% 폭등한 103만3000원에 마감했다. 증권가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을 극적으로 이뤄내며 주가를 억누르던 단기 불안감이 해소된 데다, 전날 발표된 삼성전자의 기록적 분기 실적이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다시 한번 증명하며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고 했다.

삼성전자 1분기 실적 발표를 계기로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시장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증권·테크업계에서는 이번 반도체 수퍼사이클은 짧고 강한 반짝 사이클이 아닌 굵고 길게 가는 상승 국면으로 분석한다. 최소 2027년 상반기까지, 길게는 2~3년간 지속하는 구조적 성장기로 보고 있다. 2026년이 AI 인프라 확장의 골든 이어(Golden Year)라면, 2027년은 AI가 온디바이스(PC, 스마트폰)로 완전히 스며드는 시기로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1조달러를 넘는 시점은 2030~2031년으로 예상됐는데, 2027년 1조달러 시대를 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위험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AI 버블 논란,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인한 수요 감소가 반도체 수퍼 사이클의 유지 기간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모리 사이클의 종말 오나

삼성전자는 지난 7일 1분기(1~3월)에 755% 늘어난 57조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고 잠정 발표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는 334% 늘어난 32조 3000억원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두 회사 합산 영업이익이 1분기에만 1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를 두고 반도체 업계와 증권가에선 “호황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라는 말이 나온다. 인공지능(AI) 수요에 따른 반도체 품귀 현상이 지속되면서, 양사의 실적은 분기를 거듭할수록 더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빅테크들의 초거대 AI 데이터센터 건설 프로젝트가 겨우 시작 단계인 만큼, 2년에 한 번 반복됐던 메모리 특유의 ‘널뛰기 굴레(Boom-bust-repeat)’가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호 카이스트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메모리 증설에 나섰지만, 실제 제공하는 물량은 내년부터 겨우 늘어나기 시작할 것”이라며 “빅테크의 메모리 수요는 줄어들 조짐이 없고, AI가 지속되는 한 메모리 사업은 파운드리처럼 업다운이 미미한 산업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메모리 수요가 아직 피크가 아니라는 분석에 증권가에선 양사의 목표 주가를 대폭 올리고 있다. KB증권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기존 32만원에서 36만원으로 높였다. 한국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150만원에서 180만원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삼성전자가 내년엔 엔비디아의 연간 영업이익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지만, 삼성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엔비디아(21.79배)의 3분의 1 수준(6.72배)에 불과하다. SK하이닉스는 그보다도 적은 4분의 1 수준(4.92배)이다. 양사 모두 주가 상승 여력이 여전히 크다는 뜻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최근 빅테크들이 삼성·SK와 5년 단위의 메모리 장기 공급 계약(LTA)을 맺으려 하는데, 적어도 메모리 수요가 5년은 이어진다고 본다는 뜻”이라며 “반도체 사이클이 사라지는 것은 한국 증시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소가 없어지는 것이며, 올해부터 한국 기업과 증시에 대한 가치 재평가가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AI 버블’에 달려

경고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AI 버블 논란이 대표적이다. 삼성·SK의 장밋빛 성장 시나리오는 전적으로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에 의존하고 있다. 구글·아마존·메타 등 미국 주요 빅테크는 올해에만 6500억달러(약 959조원)에 달하는 비용을 AI 인프라에 투자하기로 했고, 오픈AI·소프트뱅크·xAI 등이 투입하는 자금까지 합치면 수천조 원이 데이터센터에 쏠리고 있다. 문제는 빅테크 기업을 둘러싼 내외적 변수로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 지연될 경우, 삼성·SK 역시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빅테크들은 막대한 자금을 AI 서버에 쏟아붓고 있지만 실제 수익 모델이 그만큼 나오지 않을 경우 투자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는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최근 블룸버그는 “전력 부품 품귀로 공사가 지연되며 올해 미국에서 가동될 것으로 예상됐던 데이터센터의 절반가량이 지연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자본 리스크도 크다. 빅테크의 전례 없는 자본 지출과 관련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JP모건은 최근 주요 빅테크 5개사에 대한 신용 부도 보험 상품을 내놨다. 이는 지난 2008년 금융 위기를 예측해 막대한 수익을 낸 월가 유명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부동산 시장 붕괴 보험 상품을 설계했던 것과 같은 구조다.

미국과 이란이 완전 종전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내세운 ‘아부다비의 오픈AI 스타게이트 초토화’ 위협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우려도 있다. 증권가 관계자는 “올해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 외부 요인으로 다소 지연되더라도, 장기적인 AI 수요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주가는 작은 잡음에도 흔들리는 만큼, 보다 신중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은 경쟁적으로 설비를 늘리고 있다. 2027년 반도체 장비 매출이 사상 최대가 예상되는 데, 짓고 있는 설비가 완공되는 시점에 수요가 꺾이면 급격한 침체가 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고물가로 인한 소비자 가전 수요 위축도 위험 요인이다. 프리미엄 AI 칩은 수요가 급증하지만 보급형 가전 시장은 여전히 회복세가 더딘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