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초호황에 올해 영업이익 200조원 달성 가능성이 점쳐지는 SK하이닉스가 올해 하반기 미국 증시 상장을 목표로 공식적인 상장 절차에 돌입했다. 인공지능(AI) 수요에 따른 반도체 가격 폭등으로 올해 주가가 주당 100만원 선을 넘는 ‘100만 닉스’를 달성한 가운데, 공격적인 기술 투자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인 자금 조달에 나선 것이다. 이를 통해 AI 시대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25일 SK하이닉스는 전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미국 주식 예탁 증서(ADR) 상장을 위한 공모 등록신청서(Form F-1)를 비공개로 제출했다고 공시했다. SK 하이닉스는 이날 경기도 이천시에서 열린 제78회 정기 주주총회에서 “기업가치 재평가를 위해 ADR 상장을 추진한다”며 “발행 규모나 방식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올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7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연례행사 GTC 2026에서 기자들과 만나 “ADR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후 약 1주일 만에 쾌속으로 SEC에 공모 등록 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회사는 치열한 글로벌 기술 경쟁에 필요한 실탄 마련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주주들은 주식 수 증가에 따른 주주 가치 훼손을 우려한다.
◇역대 최대 규모의 ADR 상장 온다
반도체 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미국에 10조~15조원 규모의 ADR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25일 환율 기준 최대 10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으로, 미국에 ADR 상장한 한국 기업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지금까지 1999년 ADR 상장한 KT가 24억 9000만 달러로 가장 컸는데 27년 만에 4배에 달하는 초대형 상장이 가시화된 셈이다. 그만큼 반도체 호황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지위가 향상됐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가 해외 증시의 문을 두드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시절 LG반도체와 합병 후 늘어나는 부채 해결을 위해 1999년, 2001년 유럽에 글로벌 주식 예탁 증서(GDR) 상장을 한 바 있다. GDR은 ADR과 다르게 엄격한 SEC 등록이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상장이 훨씬 용이하다. 하지만 당시 회사 부채가 크고, 회계 불투명성 등이 문제가 돼 주가가 폭락하고 머지 않아 사실상 상장 폐지 됐다. 하지만 25년이 지난 현재 SK하이닉스는 기업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유럽이 아닌 미국 증시에 ADR로 ‘25년 만의 금의환향’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하이닉스가 ADR 상장 재도전에 나선 것은 그만큼 AI 관련 투자에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 비용은 애초 128조원에서 600조원으로 불어났고, 올해 설비 투자 비용만 30조원 이상이 예상된다. SK 하이닉스는 24일 네덜란드 ASML과 12조원 규모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ADR 상장으로 그동안 SK 하이닉스에 투자하기 어려웠던 미국 대형 연기금, 헤지펀드, 개인 투자자 자금을 수혈하고, AI 시대 기술 초격차를 위한 거액 투자를 이어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이날 주총에서 “충분한 현금은 미래 성장을 위한 전략적 자산이자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훌륭한 보험”이라며 “100조원 이상의 순현금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ADR 상장, 주가에 득일까 실일까
ADR 발행을 통한 미국 증시 상장이 기존 SK하이닉스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신주 발행을 통한 상장에는 강하게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신주를 발행할 경우 기존 주주의 지분이 줄어들게 돼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게 이유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SK하이닉스가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주를 발행해 추가로 현금을 확보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SK하이닉스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34조9423억원으로 전년(14조1564억원) 대비 146.8% 증가했다. 이는 전체 차입금(22조2479억원)을 12조원 이상 웃도는 규모다. 앞으로 대규모 투자 집행 이후에도 2028년까지 672조원의 잉여현금흐름(FCF·기업이 번 돈 중 세금이나 비용 등을 빼고 남은 현금) 창출이 예상된다는 증권가 분석도 있다. 현금이 많은 상황인데, 굳이 10조~15조원의 신주를 발행해 기존 주주 가치를 훼손시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날 주총에서도 ‘SK하이닉스의 주주 환원 정책이 부실하다’는 주주들의 지적이 빗발쳤다. 한 주주는 “ADR을 왜 신주로 발행하는 것이냐”며 “자사주를 사서 ADR 상장하라”고 했다. 이에 대해 SK 하이닉스는 “필요한 자금 규모가 있다”며 “(신주 발행 또는 자사주 매입은) 순서의 문제로 보인다. 앞으로 자사주 매입 형태도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