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이 경기도 기흥의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의 클린룸(반도체 생산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이 각각 100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고대역폭 메모리(HBM),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며 한국 기업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쌍(雙) 100조원’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018년 반도체 수퍼사이클 덕분에 58조89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지금까지 한국 기업이 한 해 거둔 최대 영업이익 기록이다.

2026년 두 회사가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연간 영업이익 200조원은 올해 정부 예산(728조원)의 27%에 해당한다. 또 코스피 상장사 636사의 작년 상반기 영업이익(110조4001억원)의 2배 가까운 액수다. 한국의 반도체 회사 두 곳이 대한민국 전체 기업과 맞먹는 수익을 내는 것이다.

29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333조605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이 거둔 한 해 최대 매출이다. 영업이익은 33.2% 늘어난 43조6011억원이다. 4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23.8% 늘어난 93조8374억원, 영업이익은 209.2% 늘어난 20조737억원을 거뒀다. 분기 기준으로 국내 기업 최대 매출·영업이익이다. 전날 SK하이닉스도 작년 연간 영업이익을 1년 전의 2배인 47조2063억원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올해 두 반도체 업체의 실적이 각각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주기적으로 맞는 ‘반도체 수퍼사이클’을 넘어 AI발 메모리 반도체 수요 폭증이 구조화됐다는 데 있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AI 혁명’이 지속되는 가운데 AI를 구동하려면 메모리 반도체가 필수다. 증권업계는 두 회사의 올해 영업이익 합계를 230조원에서 최대 330조원까지 보고 있다. SK증권은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180조원,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을 147조원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다만 두 회사의 과도한 이익 쏠림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29일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나타나는 주기적 성격을 띠었다. 수요에 맞춰 생산 시설을 늘렸다가 공급이 초과하며 다시 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하지만 인공지능(AI) 등장으로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주기성도 완전히 변했다.

인공지능(AI) 학습과 운용에 필수인 AI 가속기와 서버에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D램 등이 탑재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장기간 지속되는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는 작년 3분기 기준 전 세계 D램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67%, HBM 시장 점유율 79%를 차지하는 한국 반도체 업체에 장기 수혜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산업 구조가 바뀐다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수퍼사이클’을 넘는 ‘메가사이클’ 수준이다. 엔비디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AMD 등이 AI 가속기 개발에 착수하면서 여기에 탑재되는 HBM 수요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HBM은 D램을 아파트처럼 쌓아 올려 데이터 전송 속도를 대폭 높이고 전력 소모를 줄인 것이다.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에 쓰이던 것인데 대량의 데이터를 다루는 AI 가속기에 탑재되며 너도나도 찾는 제품이 됐다.

생산 물량이 충분치 않고, 만들 수 있는 곳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곳에 불과하다. CXMT 같은 중국 반도체 업체들도 HBM을 생산하지만 아직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다. 특히 AI 가속기 시장 80% 이상을 차지한 엔비디아는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최고 성능인 HBM4를 요구했는데, 마이크론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첨단 HBM 시장을 양분하게 됐다. 첨단 AI가 나올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은 더 늘어나는 것이다.

HBM의 높은 수요는 반도체 산업을 기존과 달리 리스크 관리가 가능한 장기 공급 계약 기반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현재 구글과 AMD, 마이크로소프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HBM 물량을 더 달라고 요구하며 장기 계약을 맺자고 제안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9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최근 고객들은 다년 장기 계약을 원하지만 물량 한계로 요청을 다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기적으로 사업 안정성을 높이는 기회가 될 예정이다. 한동희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메모리 산업은 장기 공급 계약 기반의 ‘선수주 후 증설’ 구조로 변모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D램 대신 수요가 높은 HBM을 생산하면서 상대적으로 D램 공급이 부족해졌고, 이는 가격 고공 행진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예전 부족한 공급을 메우기 위해 빠르게 생산량을 늘렸다가 치킨게임을 하며 실적이 악화했던 반도체 업체들이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미국 마이크론의 본격적인 생산 증가도 내년 이후여서 올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큰 이익을 보는 구조”라고 했다.

지난 2025년 10월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7회 반도체 대전(SEDEX 2025)을 찾은 관람객이 삼성전자 부스에서 HBM4를 둘러보고 있다. /뉴스1

◇HBM4 놓고 삼성과 하이닉스 격돌

올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보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첨단 메모리 제품인 HBM4에서 본격 기술 경쟁을 벌이며 메모리 ‘반도체 왕좌’ 싸움을 벌일 예정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경쟁이 가속화되는 사이 HBM 개발에 뒤처지며 SK하이닉스에 메모리 업체 1위 자리를 뺏긴 삼성전자는 HBM 재설계라는 초강수를 두며 기술 경쟁력 회복에 주력했다. 뒤늦게 엔비디아에 HBM3E를 납품하며 반전의 기회를 마련했고 작년 구글·AMD에도 HBM3E를 공급하며 자신감을 되찾았다.

삼성전자는 HBM4를 통해 설욕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의 HBM4는 업계 최고 수준의 동작 속도인 11.7Gbps를 안정적으로 구현한다. 메모리 대역폭도 3TB/s 수준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보다 한 단계 앞선 1c D램으로 HBM4를 만들고, 자사 파운드리에서 4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로 만든 베이스 다이에 이를 붙여 성능과 양산 안정성을 동시에 높였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측은 “작년 12월 최종 인증 단계에서 업계 최고 속도를 입증하며 ‘삼성이 돌아왔다’라는 평가를 들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부터 HBM4를 양산해 엔비디아에 출하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보다 먼저 엔비디아에 물량을 공급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HBM4도 삼성전자 제품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초 SK하이닉스 HBM4가 삼성전자의 것보다 속도가 떨어진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동일한 속도를 보인다고 공식 밝혔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주력 제품인 HBM3E 생산에 쓰는 5세대 1b D램을 HBM4에도 적용했다.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HBM4가 올라가는 베이스 다이는 대만의 TSMC의 12나노로 만든다.

반도체 업계에선 HBM 시장 선두 주자인 SK하이닉스가 올해 HBM4 시장에서도 과반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할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도 HBM4 시장에서 최대 40% 점유율을 노리며 본격적인 경쟁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날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HBM 매출은 1년 전보다 3배 이상 대폭 개선될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