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엔비디아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의 반사 이익이 기대된다. 그동안 엔비디아가 전 세계 AI(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면서 빛을 보지 못한 국내 AI 칩 제조사가 주목받고,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메모리 반도체 업체도 엔비디아 이외에 고객을 다양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진다.
탈엔비디아 진영에서 주목받는 것은 구글의 TPU 외에도 뇌 신경망을 모방한 반도체인 NPU(뉴럴 프로세스 유닛)가 있다. NPU는 인간의 뇌가 특정 자극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처럼 특화 분야에서 최대 효율을 발휘한다. 전기를 많이 먹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달리 필요한 기능만 탑재해 전력 소모가 적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고 스마트폰 등 IT 기기에 탑재돼 AI를 가동하는 데 사용된다. 한국의 AI 반도체 업체인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는 이 NPU를 설계하는데 미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퓨리오사AI는 올 초 메타로부터 1조2000억원에 인수를 제안받았지만 거부했다. 리벨리온은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킨드레드벤처스와 탑티어 캐피탈 파트너스에서 투자를 받는 등 창업 5년 만에 누적 투자액 6500억원을 유치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GPU 독식 구조에 금이 가면 한국 NPU를 채용하는 테크 기업들이 늘어날 수 있다”며 “국내 AI 반도체 업체들이 기지개를 켤 수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이득을 볼 수 있다. GPU뿐만 아니라 구글의 TPU, 국내 업체들의 NPU에는 모두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탑재된다. 구글은 자체 설계-브로드컴 설계-TSMC 제작이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여기에도 SK하이닉스의 HBM이 절반 이상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진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가 HBM의 사실상 단독 매출처였다면, TPU·NPU가 등장하게 되면 더 많은 HBM 수요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엔비디아 등과 가격 협상을 할 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삼성전자도 AMD, 브로드컴, 퀄컴 등 자체 AI 반도체를 만드는 업체를 대상으로 매출을 확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