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현지 시각) 오후 7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 ‘글로벌 빌리지’에 K팝이 크게 울렸다. 메인 스테이지에는 해골 모양 인형 탈을 쓴 DJ가 디제잉을 했고, 두바이 현지인들이 K팝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DJ 뒤 3개의 대형 디스플레이에는 해골 모양 캐릭터인 ‘꼰댓(KkonThat)’이 춤을 추고, 담벼락에 그라피티를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영상이 재생됐다. 이 영상들은 꼰댓 캐릭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을 통해 만든 것이다. 꼰댓 캐릭터는 AI로 캐릭터를 다양한 콘텐츠로 확대 생산하는 OSMU(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 주자다. 이 캐릭터는 국내, 스페인, 폴란드에서 다양한 업체와 협업하며 디제잉과 음악, 시각예술과 공연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데, AI를 통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해진 것이다. 꼰댓 캐릭터를 만든 캐릭터 IP(지식재산) 스타트업 퍼뷸러스의 유보라 대표는 “기존 작화로 영상을 만드는 데 5일 걸릴 일을 AI로 2~3시간 만에 완료할 수 있었다”며 “AI를 통해 캐릭터 활용 콘텐츠를 더 낮은 가격으로 더 빠르게 만들어 시장 반응 테스트를 할 수 있다”고 했다.
◇AI로 더 빠르고 효율적 해외 시장 공략
한국 콘텐츠 기업들이 AI를 달고 기존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이며 다각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기존 콘텐츠 업체들은 캐릭터면 캐릭터, 영상이면 영상, 만화면 만화 등 한 분야에서만 활동했다. 하지만 AI를 활용해 손쉽게 다양한 형태로 기존 콘텐츠를 변형하고 응용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K 콘텐츠 기업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더 확대된 것이다. 이전에 사람이 했을 땐 수일 걸리는 작업을 AI는 몇 시간 만에 끝내 다양한 샘플을 시장에 내놓고 선호도 조사가 가능해졌다.
지난 15~18일 두바이에서 열린 ‘2025 K-EXPO UAE’에서 한국 콘텐츠 업체들은 AI를 적용한 다양한 캐릭터와 콘텐츠, 플랫폼을 선보였다. 15~16일엔 글로벌빌리지에서 소비자 대상 행사가 열렸다. 103사, 6개 정부 부처, 12개 기관사가 참여해 한국 제품과 콘텐츠 기술을 소개했다. 17~18일 두바이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열린 비즈니스 수출 상담회는 국내 콘텐츠와 상품·서비스를 알리려는 업체들과 이를 둘러보려는 현지 바이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AI가 불법적인 콘텐츠 복제와 확산에 악용되며 콘텐츠 산업이 붕괴할 것이라는 비관론과 달리 ‘K엑스포 UAE’에 참여한 한국 기업들은 AI를 활용해 콘텐츠의 활용처와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었다. 스타트업 원미닛고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사용자가 A4 용지 1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올리면 AI가 쇼츠 영상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맥락에 맞는 작화 스타일로 영상이 제작된다. 또 AI로 한 줄 제목도 자동 생성해 준다. 고서현 원미닛고 CEO(최고경영자)는 “해외에는 언제 진출할 것인지 묻는 문의가 많았다”며 “내년 영어권을 중심으로 영업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각 회사의 서비스에 맞는 AI 휴먼을 만들고, 이를 서비스와 자산화까지 연결해 주는 ‘이모션웨이브’ 부스에도 두바이 현지 바이어들이 연달아 찾아왔다. 이모션웨이브의 장순철 대표는 “AI 휴먼 등 AI 에이전트를 만들어 산업에 적용하려는 수요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며 “현재는 미드저니나 알리바바의 큐웬, 구글의 제미나이 같은 AI를 활용하지만 향후 자체 AI 엔진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AI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회사 ‘더그림’의 신혁 CEO도 “한국 업체들은 콘텐츠에 섬세함으로 스토리를 담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여기에 AI를 적용하면서 다양한 콘셉트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테스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본 적 없는 K테크로 중동 공략
AI로 몸의 움직임과 자세를 분석하고 점수를 매기는 댄스 게임, 운동 조언을 해주는 제품도 큰 관심을 모았다. 스타트업 사이드워크의 K팝 댄스 플랫폼 ‘스텝인’은 스마트폰 앱과 오락실 아케이드 형태의 기기 앞에서 춤을 추면 AI가 이를 분석해 실시간으로 채점을 해준다. 이날 K팝 ‘라이크 제니’에 맞춰 춤을 추던 리아(15)양은 100점 만점에 82.58점을 받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댄스 플랫폼 스텝인은 게임 롤, 배틀그라운드와 함께 아시아 e스포츠 대회 시범 종목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AI 3D(차원) 센싱 기술로 자세와 신체 밸런스, 신체 나이 등을 측정하고 바람직한 운동법을 제시하는 핏트릭스 제품에도 현지인들이 몰려들었다. 두바이경제관광부 소속 두바이행사진흥청(DFRE) 아흐메드 알 카자 CEO도 제품을 10여 분 살펴보고는 “어메이징”이라고 했다. 핏트릭스의 남정우 CEO는 “사용자의 정적 자세와 움직임으로 인바디·아웃바디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는 현지인이 많다”며 “이 기술을 처음 봤다며 협업을 문의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K엑스포 UAE 비즈니스 수출 상담회에서는 국내 콘텐츠·화장품·수산·스포츠·소비재 분야 114사가 참여해 중동 및 인근 지역 바이어와 총 317건의 상담을 진행했다. 단순히 콘텐츠와 상품 자체를 판매하는 ‘소비형 한류’를 넘어 콘텐츠와 산업, 테크 기술이 어우러진 하나의 융합된 ‘K 스타일’을 중동 시장에 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K엑스포 UAE를 통해 한국 콘텐츠 기업들은 큰 주목을 받았다. 콘텐츠 분야에서만 706억원 규모의 비즈니스 논의와 18건의 업무협약이 성사됐다. 3건은 실제 234억원 규모의 계약으로 이뤄졌다. 글로벌 빌리즈에서 DJ 공연을 한 퍼뷸러스는 두바이 글로벌빌리즈 측에서 연간 계약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김락균 한국콘텐츠진흥원 글로벌혁신부문장은 “한류는 K콘텐츠, K컬처를 넘어 산업과 기술이 융합되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며 “K엑스포와 같은 행사를 통해 한류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