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붐을 주도하는 미국 반도체 칩 설계회사 엔비디아가 3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내놨다. 3분기 실적은 물론 4분기 전망치까지 월가 전문가 예상보다 높은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최근 수 주간 AI 기술과 AI 관련 주식이 과대평가됐고, 천문학적인 인프라 투자에도 실질적인 수익 창출은 어려울 것이라는 ‘AI버블’ 논란이 증폭됐고, 주가도 부진했다. AI 산업의 선행지표이자 풍향계 역할을 하는 엔비디아 실적은 글로벌 AI 산업 전반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여서 전 세계 투자자들이 엔비디아 실적 발표를 숨죽여 지켜봤다. 결과적으로 엔비디아 실적은 AI 버블 논쟁을 ‘AI버블은 과장됐고, AI 붐은 현재 진행형이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실적 발표 직후 엔비디아 주가는 장외 거래에서 5% 넘게 급등했고, 코스피지수는 1.92% 급등하며 4000선에 다시 올랐다.
하지만 엔비디아 매출 성장률이 이전보다 약화했고, 매출 대부분이 소수의 거대 클라우드 기업의 AI 인프라 투자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AI버블 논란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규모 투자 회수 시점과 경기 둔화, AI 투자 지속성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엔비디아뿐만 아니라 AI 생태계 전체가 막대한 투자에 상응하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가 AI 버블 논란의 장기적인 향방을 가를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 사상 최대 실적
19일(현지 시각) 엔비디아는 지난 8~10월(자체 회계연도 기준 2026년 3분기) 매출액 570억1000만달러(약 83조4000억원), 주당 순이익(EPS) 1.3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시장조사 업체 LSEG가 집계한 전망치 549억2000만달러를 크게 웃돌았고, EPS도 전망치(1.25달러)보다 높았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은 62%, 순이익은 60% 급증했다.
엔비디아는 AI 붐을 주도하며 지난 몇 년간 급성장해왔다. 오픈AI의 챗GPT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인 2023년만 해도 100억달러대에 머물던 엔비디아 매출은 빅테크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AI 투자 경쟁에 나서면서 급증했다. 엔비디아는 이런 성장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보며 4분기(11월∼내년 1월) 매출을 650억달러로 전망했다.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현 세대 그래픽 저장 장치(GPU)인 ‘블랙웰’ 판매량은 차트에 표시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클라우드 GPU는 품절 상태”라며 “우리는 AI의 선순환 구조에 진입했다”고 선언했다.
최근 미국 월가를 중심으로 AI 거품론이 일었다. AI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지만 AI로 아직 수익을 거두는 곳이 없고, AI 관련 기업의 가치가 주식시장에서 과대평가됐다는 것이다.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가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잇따라 회사채를 발행하며 ‘빚투’에 나선 데 대해서도 우려가 커졌다. 또 엔비디아가 자금을 댄 오픈AI가 다시 엔비디아 GPU를 구매하는 ‘순환 거래’도 AI 거품론의 핵심 근거가 됐다. 페이팔 창업자로 알려진 피터 틸 등 유명 투자자들이 잇달아 엔비디아 주식 매도에 나서면서 AI버블 논란은 커졌다.
엔비디아 실적은 이런 ‘AI 거품’ 논란을 잠재웠다. 엔비디아 실적은 AI 붐의 건전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이날 실적 결과는 AI 붐이 일부 과열 양상은 있지만 AI를 구현하려는 수요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엔비디아가 실적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다. 젠슨 황 CEO도 이날 AI 거품론을 일축했다. 황 CEO는 “AI 버블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우리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보인다”며 “AI에 대한 수요는 계속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AI 산업의 진정한 확장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했다. 전 산업 분야에 AI가 도입되면서 강력한 GPU 수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주가는 이날 실적에 힘입어 시간 외 거래에서 5%대 급상승했다. AMD는 시간 외 거래에서 약 4% 올랐고, 알파벳·아마존·메타·오라클·마이크로소프트도 모두 상승세를 보였다.
국내 증시도 급등했다. 코스피지수는 외국인과 기관 매수세에 힘입어 전날보다 1.92% 오른 4004.85에 장을 마쳤다. 삼성전자는 4.25% 오르며 10만원대를 회복했다. 반도체·전력기기 등 엔비디아 수혜주들이 일제히 상승했다.
◇고객들 자본·전력 확보가 관건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계속된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선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사들이 AI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자본과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재무 여력이 부족한 고객사들은 대규모 인프라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워 AI 도입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 엔비디아는 이번 분기 규제 공시에서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한 고객사의 자본·에너지 조달 능력이 성장의 잠재적 제약 요인”이라고 밝혔다. 다만 황 CEO는 “토지, 전력, 데이터센터 파트너들과 많은 계약을 체결해 왔고, 자금 문제도 해결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특정 대형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공시에 따르면 3분기 매출의 61%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고객사 4곳에서 발생했는데, 이 비율은 전 분기(56%)보다 증가했다. 로이터통신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오라클 등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몇몇 전문가는 소수의 AI칩 제조사와 AI 개발사, 클라우드 업체 간 거래 구조가 순환적이라는 데에 우려를 표한다”며 AI 실수요 반영보단 인위적 매출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