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닮은 로봇이 일터와 가정에서 일을 대신해 주고 대화도 나눈다. 인공지능(AI)을 통해 스스로 움직이며 학습을 하고 경험으로 체득해 다양한 환경에서 유연하게 적응하며 응용도 한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나 상상하던 이러한 ‘휴머노이드(Humanoid·인간형) 로봇’이 머지않은 미래에 ‘피지컬 AI’ 구현을 통해 현실이 될 전망이다. 우리는 왜 우리와 닮은 휴머노이드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모습과 기능을 가진 자동기계’를 의미한다. 로봇이라는 용어는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Karel Capek)가 1921년에 발표한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Rossum’s Universal Robots)’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봇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체코어로 노동, 노예, 혹은 힘들고 단조로운 일을 의미하는 ‘로보타(Robota)’에서 유래했다.
이처럼 로봇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의 노동을 보완 또는 대체하기 위함이다. 오늘날에는 산업 현장에서의 제조용 로봇을 넘어 AI 기술과 융합해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로 진화 중이다.
한재권 한양대 에리카 로봇공학과 교수(에이로봇 CTO)는 “휴머노이드의 본질은 로봇이 아닌 AI”라며 “로봇은 결국 노동력을 만들어 내는 도구로, 출산율 감소에도 로봇으로 노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오히려 기회”라고 진단했다. 이어 “인간이 구축한 환경에서 인간과 비슷할수록 인간의 일을 잘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경제성(ROI) 측면에서 범용 다목적 로봇이 필요하다”고 봤다.
사람과 비슷한 휴머노이드의 핵심 기술로는 센싱(감각), AI(인공지능), 액추에이션(구동·제어) 시스템이 꼽힌다. 카메라와 센서를 통해 스스로 수집한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황 추론과 의사결정을 하고, 유연한 동작으로 목적에 맞는 작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더욱 스마트하고 응용력이 뛰어난 인간을 닮은 로봇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제조·물류·의료·가정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이 늘며 관련 시장이 급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63.5% 성장률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가 2023년 24억3000만달러(약 3조원)에서 2032년 660억달러(약 94조원)까지 가파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다른 시장조사업체 마케츠앤드마케츠도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연평균 성장률(CAGR) 63.5%를 기록하며 2027년 173억달러(약 25조원)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더 나아가 세계적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피지컬 AI는 인류 산업 패러다임을 바꿀 차세대 기술이며, 제조·물류 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꿀 50조달러(약 7경원) 규모의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도 전 세계 휴머노이드 잠재 시장 규모가 오는 2035년 60조달러(약 8경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의 가격은 상업용 모델이 대당 평균 3만~10만달러(약 4000만~1억4000만원), 연구용 고급 모델의 경우 20만달러(약 2억8000만원)대로 형성돼 있다. 최근에는 이보다 저렴하게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제품도 출시되고 있다.
미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AI가 탑재된 다목적 로봇을 주축으로 연구·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테슬라는 2021년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Optimus)’를 공개한 후 최근 2세대 모델까지 선보였다. 지난해 6월 옵티머스 두 대를 자사 자동차 공장에 처음으로 배치해 단순 작업을 수행하도록 한 데 이어, 최근 가사·청소·요리 등 다양한 일상생활 작업을 시연하면서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향후 대당 2만~3만달러 수준(약 2800만~4200만원)으로 판매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2022년 설립한 미국 유니콘 기업 피겨(Figure)AI는 지난해 3월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손잡고 휴머노이드 로봇 ‘피겨01’을 선보였다. 이어 같은 해 8월 후속작 ‘피겨02’를 공개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BMW 스파르탄버그 공장 차체 제작 공정에 투입했다. 피겨02는 맞춤형 AI 모델을 탑재하고, 마이크와 스피커를 연결해 로봇과 사람이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BMW는 피겨02가 공장에서 차체용 금속 부품을 설비 내 정확한 위치로 옮기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피겨AI는 최근 시리즈C 투자를 받고 기업가치가 395억달러(약 56조원)까지 치솟았다.
중국은 대량생산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휴머노이드를 국가 전략 최전선 기술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 3월 발표한 5개년 계획과 2035년 비전 선포에 따라 로보틱스와 AI 등 첨단 혁신에 중점을 둔 국가 지원 벤처캐피털(VC) 펀드를 설립한다. 펀드는 향후 20년 동안 중국 지방정부와 민간 부문으로부터 약 1조위안(약 199조원)의 자본을 유치할 계획이다.
중국은 지난 4월 베이징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 대회, 5월 항저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복싱’ 대회를 성황리에 연달아 개최했다. 중국의 ‘로봇 굴기’를 보여주는 동시에 휴머노이드 시장 선점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이벤트였다.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마라톤에선 180㎝, 52㎏의 ‘톈궁(天工) 울트라’가 21.0975㎞ 전 구간을 본체 교체 없이 배터리만 세 번 갈아 끼우고 2시간40분42초 기록으로 완주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톈궁은 2023년 1월 베이징 이좡경제기술개발구에 성(省)급 규모로 설립한 ‘베이징 휴머노이드 로봇 혁신센터’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중국 항저우에 본사를 둔 ‘유니트리로보틱스(Unitree Robotics)’는 2023년 경차 가격 수준인 1300만원대 휴머노이드 로봇 ‘H1’, 2024년 2000만원대 ‘G1’을 연이어 출시했다. 예약 판매 시작과 함께 완판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신장 1.3m, 체중 35㎏의 G1 모델은 두 발로 걷고 각 팔에 3개의 손가락이 달려 있어 프라이팬으로 음식을 조리하거나 호두를 까는 등의 집안일을 수행할 수 있다. 지난 5월 항저우에서 세계 최초로 열린 ‘로봇 격투기 대회’에 등장해 또 한 번 기술력을 뽐내기도 했다. 유니트리의 기업가치는 1조9000억원으로 홍콩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이 밖에 유비테크(UBTech), 애지봇(AgiBot), 푸리에(Fourier) 등 로봇 제조사들도 함께 시장을 주도하면서, 모건스탠리는 중국이 2050년까지 전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의 30%를 점유할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기계공업협회(VDMA) 산하 로보틱스·오토메이션협회 디트마 레이 회장은 최근 국제로봇연맹(IFR) 보고서에서 “국가 전략이 있는 중국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털이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휴머노이드 기술은 실험실을 넘어 확장 가능하고 가격 경쟁력이 있는 생산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AI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사 로브로스 박현준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미국의 피겨AI나 테슬라는 공장에서 노동력을 대체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목적이 뚜렷한 반면, 중국은 이족 보행을 통한 이동성 등 하드웨어적 퍼포먼스 위주”라며 “미국과 중국도 실제 시장에서 상용화를 위한 최종 목적지를 놓고 보면 기술적으로 시작 단계에 불과해 우리나라와도 1m 차이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韓, 2030년까지 3조원 투자도 역부족
글로벌 휴머노이드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국내에서도 관련 산업 지원과 연구·개발(R&D)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제4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1조원 이상 정부 예산에 민간 투자 확대를 더한 총 3조원 이상의 대규모 민관 합동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기술력 강화, 전문 인력 양성, 기업 경쟁력 제고 등이 주요 목표다. 이를 통해 국내 지능형 로봇 100만대 보급과 핵심 부품 국산화율 80%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4월에는 국가 차원 전략하에 산업통상부 주관으로 산·학·연·정 협력체 ‘K-휴머노이드 연합’도 출범했다. 오는 2030년까지 세계 휴머노이드 최강국 도약을 목표로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관련 기업, 대학, 연구소 등 200개가 넘는 기관이 모였다. 총괄위원회 아래 △AI 개발 △로봇 제조사 △로봇 부품사 △수요 기업 △대학 인재연합 △연구·전문가 분야별 그룹을 꾸려 시너지를 꾀한다. 2028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범용성 있는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해 제조사 그룹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2021년 1477억원 수준의 로봇 R&D 지원 예산을 올해 2084억원으로 늘렸다. 연합 내 2개 이상 기업 협력 사업을 우선 지원한다. 관계 부처 및 정부와 협력을 통해 내년 이후 관련 예산도 증액할 방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융합연구 혁신전략위원회’를 통해 2040년 범용 휴머노이드 일상화에 대비한 9대 중점 기술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2026년부터는 관련 예산과 정책을 본격 집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중국에 비해 투자 규모는 현격히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 정부가 로봇 산업에 향후 5년간 3조원을 투입한다면 연간 6000억원 수준에 그친다. 반면 중국은 향후 20년간 1조위안(약 199조원)을 투입할 계획으로 연간 약 10조원에 달한다. 한국 대비 약 17배 규모다. 이에 따라 ‘로봇 격차’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따른다.
국내 한 로봇기업 대표는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우리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대기업의 선제적 투자와 업계 간 유기적 협력, 정부의 예산 확대와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업계에서는 열강의 자본 경쟁 속에서 우리나라가 AI 기반 핵심 정밀부품과 소프트웨어 등 원천 기술력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 잇따르고 있다.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휴머노이드연구단 교수는 “중국은 저렴한 하드웨어 플랫폼에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접목해 잘 걷는 로봇을 만들고, 미국은 AI를 기반으로 산업 현장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며 “AI 로봇 시스템이 상용화되려면 작업 성공률이 거의 100%에 달해야 하지만, 아직은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피지컬 AI 구현을 위해선 다양한 산업과 기술이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하며, 로봇이 실제 업무에 적응하려면 ‘심 투 리얼(Sim to Real·가상 시뮬레이션에서 얻은 결과나 기술을 실제 환경에 적용하는 과정)’ 기술 확보가 핵심”이라며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 수집과 인프라 등 협력 체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두뇌·감각 구현 정밀기술로 차별화해야
국내 대기업 중에서는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휴머노이드 로봇 상용화 촉진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시작과 함께 새로운 중점 사업 전략 중 하나로 휴머노이드 등 미래 로봇 개발을 제시하고 나섰다. 최근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콜옵션(주식 매입 권리)을 행사하고 최대 지분을 확보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누적 투자액은 약 3542억원으로 추산된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명예교수가 창업한 기업으로, 국내 최초로 이족보행 로봇 ‘휴보(HUBO)’를 개발하는 등 세계적 수준의 휴머노이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대표이사 직속으로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고, AI 및 소프트웨어 기술에 레인보우로보틱스의 로봇 기술을 접목해 지능형 첨단 휴머노이드 연구·개발과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30년까지 반도체 무인 공정을 구현하기 위한 로봇 연구와 검증에도 집중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2021년 소프트뱅크로부터 미국 로보틱스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을 11억달러(약 1조5000억원)에 인수하면서 HMG글로벌 자회사로 편입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20년 사족보행 로봇 ‘스폿(Spot)’ 출시에 이어 2024년 4월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Atlas)’의 새 모델인 ‘올 뉴 아틀라스’를 선보였다. 이 로봇은 최근 연구소에서 뒤로 공중제비(덤블링)를 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전 세계에 선보이며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대차는 수년 내에 휴머노이드 로봇 R&D와 개념검증(PoC)을 완료하고, 차세대 자동차 제조 공정에 투입해 상용화할 계획이다.
이 밖에 휴머노이드 구현을 위한 정밀 부품인 센서와 액추에이터(구동기), 이차전지 등 배터리, AI와 소프트웨어, 빅테크 등 핵심 원천 기술력을 보유한 토종 스타트업과 전문기업들도 많다. 이들이 꾸준히 역량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육성하고 협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따른다. 특히 제조업 강국으로서 한국이 축적해 온 산업 지식과 정밀가공 기술, 그리고 로봇 핸드(그리퍼)와 손가락 센서 등 고도 부품 기술은 세계적 경쟁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로봇 본체 플랫폼은 다른 나라에 맡기더라도, ‘두뇌’와 ‘감각’ 기술이 결합된 범용 휴머노이드 개발에선 한국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재권 교수는 “로봇은 행동을 하는 기계이기 때문에 로봇 AI를 만들려면 행동 데이터가 핵심”이라며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그런 데이터가 풍부해 엄청난 기회가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한국 근로자들의 손에 녹아 있는 ‘암묵지(말과 글로 기록할 수 없는 지식)’를 데이터로 전환하면,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로봇을 만들 수 있다”며 “휴머노이드 경쟁력을 위해선 반도체와 배터리, 특히 로봇 핸드를 만드는 액추에이터 기술이 더 발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생태계 조성과 함께 ‘소버린 AI’를 넘어 ‘소버린 로봇’ 전략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이면서, ‘K-휴머노이드 연합’에 희망을 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