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 레안드로의 핵융합 에너지 스타트업 ‘퓨즈 에너지 테크놀로지스’(퓨즈)의 본사 건물 안에 핵융합 드라이버인 ‘타이탄’ 장비가 설치돼있다./퓨즈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미국 샌 레안드로의 핵융합 에너지 스타트업 ‘퓨즈 에너지 테크놀로지스’(퓨즈) 본사. 축구장 절반 남짓한 약 4000㎡ 규모의 이 공간은 책상과 의자가 즐비한 일반적인 사무실 모습과는 달랐다. 큰 창고 같은 공간엔 핵융합 에너지를 실현하기 위한 장비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퓨즈 관계자는 “핵융합 기업 대부분은 아직까진 사무실 정도만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실제 기계를 두고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라고 했다.

핵융합 발전은 쉽게 말해 태양이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것이다. 태양 속에는 아주 가벼운 수소 원자들이 엄청난 압력과 온도 속에서 서로 부딪혀 하나의 더 무거운 원자인 헬륨으로 합쳐지는데, 이때 질량의 일부가 에너지로 바뀐다. 연료가 무한하고, 탄소 배출도 없는 데다가 핵 폐기물도 나오지 않아 ‘꿈의 에너지’로 여겨진다. 아직 상용화는 안 됐지만,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을 계속해 나가는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퓨즈도 그중 하나다.

◇퓨즈, 핵융합 발전 장치 ‘타이탄’ 개발 중

핵융합을 만들어내려면 1억도 이상 초고온과 정밀한 플라즈마(핵융합 연료) 제어가 필요하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퓨즈는 ‘마그레프’ 방식의 기술을 개발한다. 이 방식은 비교적 최근에 주목받는 방식으로, 핵연료(플라즈마)가 담긴 작은 금속통을 준비한 다음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이용해 핵융합이 일어날 정도의 초고온·초고압 상태를 만든다.

반면 다른 기업들은 주로 거대한 장치에 플라즈마를 넣고 플라즈마가 식지 않도록 자석을 활용해 오래 고온을 유지해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게 하는 ‘토카막’ 방식을 쓴다.

퓨즈는 ‘마그레브’ 방식의 핵융합 발전을 위해 핵융합 드라이버인 ‘타이탄’을 직접 개발해 제조했다. 핵융합을 만들어내려면 1억도 이상 초고온과 정밀한 플라즈마(핵융합 연료) 제어가 필요하다. 타이탄은 아주 강력하고 순간적인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플라즈마를 순식간에 압축하고 가열해 핵융합이 일어날 수 있는 초고온·초고압 상태를 만든다. 퓨즈 측은 “이 타이탄은 네이처에 실렸고 외부 기관의 검증을 받은 세계 최고 출력·효율의 기기”라고 소개했다. 또 퓨즈는 이 같은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도 상당수 직접 제작하면서 비용을 낮췄다.

하지만 핵융합 발전은 상용화까지 갈 길이 멀다. 학계에서는 이 같은 핵융합 기술의 상용화 시점을 2050년, 빨라야 2030년쯤으로 보고 있다. 연구·개발을 지속하기 위해서 퓨즈는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핵융합이 일어날 때 자연스럽게 ‘방사선’ 형태로 방출되는데, 이걸 버리지 않고 테스트 서비스로 기업에 판매하는 것이다. 가령 ‘타이탄’에서 나온 방사선을 가지고 국방·위성·반도체 회사에 “우리 장비에서 나오는 방사선으로 네가 만든 전자기기나 소재가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해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위성 부품이 우주 방사선 환경에서 오작동하지 않는지, 반도체가 중성자 충격에도 오류 없이 작동하는지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사업으로 번 돈으로 퓨즈는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를 위해 연구하고 있다.

JC 브타이시(25) 퓨즈 CEO./퓨즈

퓨즈를 운영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레바논 출신으로 올해 25세인 JC 브타이시다. 핵물리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전자 장치를 분해하거나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물리나 공학 쪽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며 청소년 시절 플라즈마 실험실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19세 때 대학을 가지 않고 퓨즈 창업을 선택. 젊은 CEO가 있는 덕에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50여 명 중 상당수는 UC버클리 등 인근 대학을 갓 졸업한 20~30대 젊은 연구자들이다.

퓨즈의 기업 가치는 지난해 9월 기준 2억달러(약 2840억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미국 정부의 연구 기관인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미 국가 안보 관련 기밀 연구를 진행하는 샌디아국립연구소와 파트너십을 맺는 등 정부 기관과의 협력도 활발하다.

◇’꿈의 에너지’ 도전하는 스타트업들

핵융합 발전 에너지에 대한 회의론은 여전히 많다. 경제성이 떨어지고 상용화 시점이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퓨즈처럼 이 기술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는 스타트업도 적지 않다. 특히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이 같은 연구는 대부분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브타이시 CEO는 “50여 핵융합 스타트업 중 40여 개가 미국 기업”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곳은 미국의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다. ‘토카막’ 방식으로 핵융합 발전 기술을 개발하며 20억달러 이상 투자를 받았다. ‘헬리온 에너지’는 업계 최초로 마이크로소프트와 2028년 핵융합 발전을 통한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미국의 ‘티에이이 테크놀로지스’ 역시 구글 등을 비롯해 여러 기업에서 13억달러 이상을 투자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