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현지 시각) 미 뉴욕주 요크타운 하이츠에 위치한 IBM 왓슨 리서치 센터. 대형 스테인리스 냉장고처럼 생긴 구조물이 ‘삑삑’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IBM 최초 모듈형 양자 컴퓨터 시스템인 ‘퀀텀 시스템 2’다. 육각기둥 구조물 양옆으로 사각기둥 구조물이 두 개씩 붙어있는 모습이다. 육각기둥 안에서는 양자 컴퓨터가 작동하고 있고, 사각기둥에는 양자 컴퓨터를 지원하는 전자 제어 장치, 단순 계산을 도와주는 평범한 컴퓨터 서버 장비가 들어있다.
‘퀀텀 시스템 2′ 옆엔 양자 컴퓨터 내부 구조를 보여주는 실물 80% 크기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샹들리에’를 닮은 모양으로, 가장 아래 쪽에 IBM 최신 양자 칩인 ‘퀀텀 헤론’이 3개 설치돼 있다. 156큐비트(큐비트는 양자컴 연산의 기본 단위) 수준의 양자 칩으로, 보통 컴퓨터가 수십 년 동안 풀지 못한 문제를 1~2초에 해결할 만한 연산 능력을 갖췄다.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한 양자 칩은 -273도에 가까운 초저온을 유지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양자 칩을 유지하기 위해 헬륨을 활용해 양자 컴퓨터를 냉각하다 보니 리서치 센터에선 헬륨이 압축·순환되며 만드는, 마치 병아리 소리 같은 기계음이 끊임없이 들렸다.
스콧 크라우더 IBM 양자컴퓨팅부 부사장은 “올해는 양자역학이 발견된 지 100주년이 된 해인데, 그간 양자역학은 레이저, 반도체, LED 같은 기술 발전을 일으켜 왔다”며 “앞으로 100년은 양자 컴퓨터가 그보다 큰 기술적·경제적 발전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했다.
◇IBM 최신 양자 컴퓨터 보니
양자 컴퓨터란 원자(原子) 수준의 미시 세계를 다루는 양자물리학 이론을 기초로 만든 것이다. CPU·GPU 기반 기존 컴퓨터는 정보를 0 또는 1의 비트로 저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나씩 순서대로 계산한다. 반면 양자 컴퓨터는 입자를 0과 1의 디지털 정보를 동시에 갖는 양자 중첩 상태인 ‘큐비트’로 만들어 빠르게 연산한다.
양자 컴퓨터에도 단점이 있는데, 열·진동 같은 외부 자극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류율이 높아 그간 상용화되지 못했고, “양자 컴퓨터는 시장성이 없다”는 회의론도 커졌다.
이런 지적에도 IBM은 그간 꾸준히 양자 컴퓨터 기술을 개발해 왔다. 2001년 최초로 5큐비트 양자 컴퓨터 실험에 성공했고, 2017년 클라우드 기반 양자 컴퓨터를 공개하면서 관련 기술을 선도해 왔다. 특히 지난 6월 ‘양자 컴퓨터 상용화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양자 컴퓨터 로드맵에 따르면, 내년엔 기존 수퍼컴퓨터보다 뛰어난 성능을 갖춘 ‘양자 우위’ 단계에 도달하고, 2029년에는 오류를 스스로 수정할 수 있는 ‘오류 내성’ 양자 컴퓨터를 실용화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크라우더 부사장은 “일부 회의론이 있는데, 우리가 점점 성공에 가까워지고, 양자 컴퓨팅 기술 이점을 계속 보여준다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신 있다”고 했다.
◇양자컴 상용화 시기 성큼
다른 국가와 기업도 양자 컴퓨터 개발에 한창이다. 구글은 지난해 12월 105큐비트 규모 양자 칩 ‘윌로’를 공개했는데, 수퍼컴퓨터로 사실상 불가능했던 계산을 5분 만에 완료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요라나’, 아마존은 ‘오셀롯’이란 양자 컴퓨터를 개발 중이다. 중국도 72큐비트 규모 양자 컴퓨터를 개발해 운영 중이고, 덴마크·캐나다 등도 연구실 수준을 넘어 실사용 가능한 상업용 양자 컴퓨터 시스템 구축을 진행 중으로, 2~3년 안에 본격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면 사회 곳곳에서 획기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특히 신약 개발 분야는 양자 컴퓨터 활용이 가장 기대되는 분야다. 약물은 분자와 분자 간 상호작용으로 효능을 내는데, 고전 컴퓨터는 이 복잡한 현상을 정확히 계산하지 못한다. 이때 양자 컴퓨터를 활용하면 항암제, 치매 치료제, 감염병 백신 등 신약 개발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리튬이온 배터리 개발, 태양전지 연구와 같이 원자·분자 단위의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 에너지·배터리 소재 개발 분야에서도 양자 컴퓨터가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