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공지능(AI)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스타트업 리벨리온과 삼성전자가 챗GPT 같은 초거대 언어 모델(LLM) AI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AI 반도체를 공동 개발한다. 리벨리온은 “회사의 세 번째 AI 반도체 ‘리벨’은 핵심 설계를 리벨리온이 맡고, 삼성전자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HBM(고대역폭 메모리)3E를 탑재해 삼성 파운드리(위탁 생산) 첨단 공정인 4나노미터(nm·1㎚는 10억분의 1m) 공정으로 생산하기로 했다”며 “설계 초기 단계부터 삼성전자와 협업해 내년 말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라고 5일 밝혔다.
삼성전자는 연이어 국내외 AI 반도체 스타트업 제품을 수주하고 있다. 지난 3일 ‘CPU(중앙처리장치) 설계의 거장’으로 불리는 짐 켈러 CEO(최고경영자)의 캐나다 AI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런트가 삼성전자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서 4나노 공정을 통해 차세대 AI 반도체 위탁 생산을 하겠다고 발표했고, 지난 8월에도 미국 AI 반도체 스타트업 그로크가 삼성전자와 4나노 공정 양산 협업을 발표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 4나노 공정의 수율(收率·생산품 대비 정상품 비율)이 올해 초 50% 수준에서 70% 이상으로 올라가면서 안정적인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이 구축됐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AI 반도체 위탁생산을 사실상 독점한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AI 반도체 시장 개척이 판도를 흔들 수 있을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리벨리온, 초기 설계 단계부터 협업
AI 반도체는 AI가 데이터를 학습하고, 실제 AI 서비스를 하도록 컴퓨터 연산력을 제공하는 핵심 하드웨어다. AI 구동에 필요한 반복적이고 빠른 연산 기능에 특화된 반도체로, 챗GPT의 등장으로 늘어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리벨리온은 이 수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칩 설계 초기 단계인 ‘레벨0′부터 협업하기로 했다.
AI 연산 속도를 높이는 로직 칩 설계는 리벨리온이 맡고, 삼성전자는 이 로직 칩과 내년 양산 예정인 회사의 HBM3E를 연결해 최종 제품을 최적화하는 디자인 단계까지 맡는다. AI 반도체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원하는 고용량·고속 특화 메모리가 필요한데, 삼성전자의 차세대 HBM을 활용하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올해 초 신설한 AVP(어드밴스드 패키지) 사업팀과 파운드리 디자인 서비스(FDS)팀이 설계 과정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삼성전자는 설계도만 받고 단순 위탁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설계 칩 구동에 필요한 연산·저장·전력 등의 여러 기능을 조합해 제품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함께 하면서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텐스토런트의 AI 반도체도 삼성전자가 칩 최적화를 도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삼성 파운드리 4나노 수율 70% 이상”
테크 업계와 투자 업계에선 삼성전자 4나노 공정의 현재 수율이 70~75%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5월 해외 테크 전문 매체와 인플루언서들은 해외 고객사 내부 분석을 인용해 삼성전자의 4나노 수율이 크게 개선됐다고 전했고, 최근 국내 하이투자증권도 “삼성전자의 4나노 수율이 75% 수준에 도달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4나노 수율이 50% 내외에 그쳐, 80%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 TSMC에 30%포인트 이상 크게 뒤처졌지만 이 격차를 빠르게 좁힌 것이다.
AI 반도체 시장은 미국 엔비디아가 설계한 반도체가 세계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고, 이 물량은 전량 TSMC가 생산한다. ‘엔비디아(설계)-TSMC(생산)’ 파트너십이 AI 반도체 시장을 독점하는 구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설계도대로 생산만 하는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자체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내부에 설계 인력까지 갖춘 것이 강점”이라며 “AI 반도체 팹리스들과 협업 및 양산이 성공 사례가 되면 첨단 공정에 대형 고객을 유치하는 것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