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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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을 연구하는 제약사와 과학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얘기가 있습니다. 개발만 하면 떼돈을 버는 것은 물론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는 의약품이 두 가지 있는데 바로 다이어트약과 탈모 치료제라는 겁니다. 두 가지 모두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요가 있지만 먹기만 하면 체중을 줄여주거나, 머리가 다시 자라게 하는 약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미지의 영역에 도전했지만 임상시험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어떤 약품은 출시까지 이뤄졌지만 심각한 부작용으로 퇴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진짜 ‘다이어트약’이라고 불릴 만한 의약품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부터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이 의약품의 도움을 받아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바로 덴마크 제약회사인 노보노디스크의 비만 치료제 ‘위고비(Wegovy)’입니다. 세마글루타이드라는 성분의 주사제 위고비는 주당 1회씩 맞으면 평균적으로 10% 이상의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고비가 인기를 모으면서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노보노디스크가 생산하는 같은 성분의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Ozempic)의 수요까지 급증하고 있습니다. 기술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위고비에 대해 전문가들이 의학적 돌파구이자 은총알(Silver Bullet·특효약)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에 실린 일라이 릴리의 비만치료제 '마운자로'의 임상시험 결과.

이게 끝이 아닙니다. 미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앞두고 있는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Mounjaro)의 경우 지난해 7월 의학 권위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됐는데 무려 체중의 최대 22.5%까지 줄여준다고 합니다. 이제 마음껏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시대가 열린 걸까요. 물론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디코드 2.0이 비만치료제의 원리와 가능성, 우려를 하나하나 짚어 봤습니다.

◇비극이 된 펜-펜

비만치료의 역사는 몇 가지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우선 1950년대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개발된 공회장우회술(jejunoileal bypass)이 있습니다. 소장의 일부를 우회해 음식물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게 하는 방법인데 체중 감소 효과가 탁월했지만 영양 부족, 신장 결석, 골다공증 같은 합병증이 발생하면서 현재는 아주 제한적으로만 시술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에는 위우회술, 1970년대에는 위축소술이 개발됐습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수술적 치료는 부작용이 워낙 치명적인데다 효과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위축소술을 받은 환자 4명 가운데 1명은 10년 뒤 체중이 수술 이전 상태로 돌아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수술 자체를 다시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펜플루라민과 펜터민이라는 두가지 약물을 복합한 이른바 펜-펜(fen-phen)이라는 처방이 개발됐습니다. 단기간에 평균 10kg 이상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인 펜-펜은 미국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는데 1997년 FDA가 “이 약물이 심장 판막에 손상을 일으킨다”고 밝히면서 시장에서 퇴출시켰습니다. 2012년까지 무려 17만5000명의 환자가 제약사 와이어스와 의약품 유통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만치료제를 찾았는지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당시 와이어스가 대부분 40대 여성이었던 피해자들에게 보상한 금액만 140억달러(약 18조2000억원)에 이릅니다.

◇미국의학협회 “비만은 질병”

펜-펜 이후 비만치료제 개발은 정체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 미국의학협회(AMA)가 비만이 질병이라고 공식화합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상대적으로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이 과연 질병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AMA의 발표를 계기로 비만이 비전염성 질병을 유발하고, 비만 그 자체도 만성적으로 재발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확립됐습니다. 제약사들은 앞다퉈 비만치료제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유는 명확합니다. 전세계적으로 과체중 또는 비만인구는 19억명 이상이고 매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발하기만 하면 엄청난 수익이 보장된다는 뜻입니다.

비만치료제 삭센다

하지만 비만치료제는 제약사들 사이에서 의학보다는 신화에 가까운 영역이었습니다. 와이어드는 “비만치료제는 장기 이식이나 항생제 개발 같은 의학 분야라기 보다는 금을 탐사하거나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했다”면서 “과학적 진보보다는 투자를 받은 뒤 파산하는 투기였다”고 했습니다. 동물실험에서 수많은 신약 후보물질이 효능을 입증했지만, 사람에게 적용하는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위고비 이전 가장 각광받은 비만치료제는 노보노디스크가 출시한 ‘삭센다(Saxenda)’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죠. 그런데 리라글루타이드 성분의 삭센다는 매일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다 1년 이상 맞아도 체중 감량이 6%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비만치료제이기는 하지만 효능은 ‘글쎄’였다는 겁니다.

◇”많이 먹었다” 속이는 호르몬

위고비는 2021년 FDA에서 체중 감량을 위한 목적의 처방을 승인 받았습니다. 위고비의 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는 원래 제 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습니다. 이 성분은 인슐린 생산을 자극하고 식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1·Glucagon-like peptide-1) 수용체 작용제인데 GLP-1은 원래 음식을 먹거나 혈당이 올라가면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당뇨병 환자에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후속 연구에서 GLP-1이 뇌의 포만중추를 자극한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배가 부르다고 느끼게 만들면서 식욕을 억제하는 겁니다. 여기에 칼로리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적게 먹고 칼로리 소비를 늘리니 체중 감량이 되는 겁니다. 위고비를 투약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보다 3분의 1 정도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가 위고비보다 효과가 큰 것은 여기에 사용된 성분 티르제파타이드 때문입니다. 티르제파타이드는 GLP-1 뿐만 아니라 GIP(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분비 폴리펩타이드·Gastric inhibitory polypeptide)라는 호르몬에도 동시에 작용합니다. GIP 역시 혈당수치를 조절하고 포만감을 느끼게 합니다. 두 가지 호르몬에 작용하니 더 많은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죠.

◇머스크·카다시안이 열풍 촉발

지난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는 '체중 관리 비결'을 묻는 트윗 질문에 '위고비'라고 답했다.

지난해 시작된 위고비 열풍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유명인 두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트윗 질문에 “단식, 그리고 위고비”라고 답합니다. 또 유명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은 마릴린 먼로의 오래된 드레스를 입기 위해 3주 만에 7kg 이상 감량했는데 “카다시안이 위고비를 사용했다”는 소문이 확산됐습니다. 이후 위고비는 순식간에 품귀 상태가 됐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대체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노보노디스크가 2017년 출시한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Ozempic)입니다. 오젬픽과 위고비의 성분은 세마글루타이드로 동일합니다. 위고비 대신 오젬픽을 처방 받아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비만치료제로 사람들이 오젬픽을 처방 받다 보니 정작 이 약이 필요한 당뇨 환자들이 곤경을 겪고 있습니다. 노보노디스크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만 위고비와 오젬픽 모두 당분간 품귀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한 행사장에서 마릴린 먼로의 옛 드레스를 입은 킴 카다시안. 당시 카다시안이 체중 감량을 위해 위고비를 사용했다는 소문이 확산됐다.

노보노디스크는 그야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글로벌 시장분석업체 이벨류에이트밴티지는 노보노디스크를 올해 가장 큰 매출 성장을 이룰 제약사로 꼽았습니다. 올해 예상되는 매출만 해도 오젬픽이 20억달러(약 2조6000억원), 위고비가 15억달러에 이릅니다.

◇끊는 순간 체중·식욕 돌아오는 한계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습니다. 과연 위고비와 오젬픽, 마운자로가 ‘기적의 다이어트약’인가 하는 점이죠. 애석하게도 세가지 약 모두 같은 문제와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약효의 지속 문제입니다. 세 약 모두 1년 이상 장기간 투약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투약을 중단하는 순간 효과가 끝납니다. 뉴욕타임스는 “오젬픽을 사용해 10kg 이상을 감량하더라도 약을 끊으면 두 달 만에 식사량과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온다”면서 “다시 투약을 시작하더라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노보노디스크가 위고비나 오젬픽을 68주 이상 투약한 뒤 사용을 중단한 사람들을 추적 조사했는데 1년 뒤 전체 참가자들의 체중 회복이 3분의2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위고비나 오젬픽으로 9kg을 뺀 사람이 약을 중단한 것만으로 6kg이 다시 늘었다는 얘기입니다.

/픽사베이

부작용이 없는 약은 없습니다. 건강에 좋으면서 효과가 있는 건 약이 아니라 건강식품입니다. 두통, 배탈, 메스꺼움, 구토, 현기증은 위고비·오젬픽 사용자 사이에서 가장 흔한 부작용입니다. 특히 이들 약물은 당뇨 환자와 초고도 비만 환자들을 대상으로 개발됐습니다. 당뇨병이나 비만을 치료하지 않으면 다른 위험이 일어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환자들입니다. 하지만 정상 체중이나 약간의 과체중인 사람들이 약을 장기간 사용했을 경우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연구가 심도 있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가격도 큰 장벽입니다. 위고비의 경우 한달치가 1350달러(약 175만원) 수준인데 효과를 보려면 최소 6개월 이상 투약해야 합니다. 마운자로는 월 1540달러(약 200만원)로 더 비쌉니다. 웬만큼 부자가 아니면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해 장기간 투자하기에는 망설일 수밖에 없는 금액입니다.

◇'비만이 무엇인가’를 둘러싼 논란

비만치료제 열풍과 별개로 비만을 연구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흔히 ‘비만은 많이 먹어서 생긴다’라고 생각하지만 이 가정부터 잘못됐을 수 있다는 겁니다.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국왕립학회 비만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은 ‘전세계적인 비만 급증은 (많이 먹는 것 같은) 단순한 이유가 아닌 복합적인 문제’라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합니다. 비만 위험에는 1000개 이상의 유전자 변이가 관련돼 있고, 비만인 사람 가운데서도 암·제2형 당뇨병·고혈압·심장마비 위험이 정상인에 비해 전혀 높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특히 비만이 동물이 아닌 사람의 문제인 만큼 충분한 실험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BMI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정상체중·과체중·비만을 구분하는 가장 유명한 지수 ‘BMI(체질량지수)’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습니다. BMI는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눠 18.5 미만은 저체중, 18.5~24.9는 정상 체중, 25.0~29.9는 과체중, 30 이상은 비만으로 구분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BMI는 1800년대에 개발된 지수인데다, 개발과 활용을 주도한 것도 의사나 과학자가 아닌 보험회사였습니다. 고객들의 건강 위험을 파악하기 위한 척도였죠.

물론 BMI는 대규모 연구에서는 유용성이 충분히 입증돼 있습니다. BMI가 높으면 일반적으로 각종 건강 위험이 높다는 식이죠. 하지만 전문가들은 BMI는 개인의 건강을 나타내는 지수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뉴욕타임스는 “BMI는 사람의 체중 가운데 지방, 근육, 뼈를 구분할 수 없고 그 결과 근육질 운동선수는 체지방이 낮은데 BMI는 높게 나타난다”면서 “복부 지방처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예 파악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널 메시 같은 유명 운동 선수들도 BMI로만 따지면 다 과체중입니다. 2016년 미국인 4만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과체중으로 분류된 사람의 절반, 비만인 사람의 4분의 1은 각종 신진대사가 아주 건강한 반면 정상인 사람의 31%가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BMI가 백인 남성 위주로 개발되고 연구된 지수라는 점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다이어트는 많은 사람들의 열망이자 도전의 대상입니다. 한때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했다는 황제 다이어트가 화제를 모았고 덴마크 다이어트 같은 원푸드 다이어트는 음식의 종류만 바꿔가면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시도하던 ‘간헐적 단식’과 관련된 실망스러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간헐적 단식은 이른바 ‘시간 제한 다이어트’로 불리는데 중국 남방의대와 미국 툴레인대 연구진이 추적조사한 결과 간헐적 단식이 단순히 칼로리를 제한하는 일반적인 다이어트 방식과 차이가 전혀 없다고 나타났다는 겁니다.

비싼 약을 사서라도 살을 빼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일어나겠죠. 위에서 언급했던 작년 영국 왕립학회 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동의한 비만 예방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더 나은 수면, 더 많은 운동, 스트레스 관리, 더 많은 과일과 채소 섭취랍니다. 모두가 아는 얘기이죠. 어디까지나 의지와 실천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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