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터넷망 서비스 업체 SK브로드밴드와 미국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넷플릭스 간 다툼으로 촉발된 ‘망(網) 이용료’ 논쟁이 세계 통신 업계와 빅테크 간 대결로 번져가고 있다. 오는 13일부터 미국 아마존이 운영하는 인터넷 게임 방송 서비스 트위치는 한국에서 VOD(주문형 비디오) 기능을 중단한다. 앞서 화질을 기존 1080픽셀(화소수)에서 720픽셀로 떨어뜨린 데 이어, 한국에만 적용되는 조치를 추가로 내놓는 셈이다. 공식 입장은 ‘진화하는 규제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지만, 망 이용료 논쟁에 대한 불만 표출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국 구글이 국회에 상정된 ‘망 이용료 의무화법’을 막기 위해 지난 9월부터 반대 여론전에 나서자, 그간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국내 통신 업체들은 공동 대응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달 말에는 세계 750개 통신 업체의 모임인 GSMA(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 측 고위 임원이 방한해 국내 통신 업체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GSMA는 이달 중 EU(유럽연합)에 빅테크의 망 이용료 압박을 위한 법안 마련을 정식 요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네이버·카카오는 내는데…

국내에서 이 논쟁은 네이버나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 기업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유발하는 빅테크들이 한국 통신 업체에 망 이용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는 역차별 논란에서 비롯했다. 넷플릭스는 지난 2020년 망 이용료를 요구하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서 자신들은 망 이용료를 낼 채무가 없다는 점을 확인받고자 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해 6월 패소했다. 이에 항소해 2심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그러는 사이 여야 의원들이 국회에 ‘망 이용료 의무화법’을 잇따라 발의하자, 구글이 넷플릭스 지원군으로 가세했다. 입법화가 되면 유튜브 운영으로 막대한 데이터양이 발생하는 구글도 국내 통신 업체들에 망 이용료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구글이 국내 전체 트래픽의 27.1%, 넷플릭스가 7.2%로 각각 상위 1·2위를 차지했다. 이 두 기업 트래픽양이 전체의 3분의 1 이상인 셈이다. 3~5위는 미국 메타(3.5%)와 네이버(2.1%), 카카오(1.2%)로, 이들은 국내에서 망 이용료를 내고 있다.

”캐시서버로 통신사 부담 줄여줘”

망 이용료에 반대하는 빅테크의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동일 서비스에 대한 이중 과금’이라고 설명한다. 통신 업체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이미 인터넷 서비스 이용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이용료를 부과하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다만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1심 때 법원이 판결문에 신용카드 회사를 사례로 들며 “(카드사가) 소비자로부터 연회비를 받고, 가맹점으로부터 결제 수수료를 받는 것처럼 동일한 서비스에 대해 양측 당사자에게 이용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적시하자, 최근에는 이 주장을 자주 내세우지 않는다.

둘째는 자신들이 캐시서버(사용자 가까이에 있는 보조 서버)와 해저 케이블 같은 네트워크 인프라에 따로 투자한 만큼 통신 업체에 망 이용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자체 비용으로 이용자들이 자주 보는 콘텐츠를 본토 서버에서 한국이나 인근 국가 캐시서버로 옮겨 통신 업체들의 트래픽 부담을 줄여줬다고 설명한다. 현재 넷플릭스는 일본·홍콩에, 구글은 한국에 캐시서버를 두고 있다. 넷플릭스는 “세계 여러 곳에 (캐시서버를) 분산해놨기 때문에 2020년에만 전 세계 통신 업체들이 약 12억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본 것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셋째는 망 이용료 부과 시 부담이 늘기 때문에 소비자 지원을 축소하거나 서비스 비용을 올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구글 유튜브의 거텀 어낸드 아태 지역 총괄 부사장은 유튜브코리아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망 이용료는) 이중 부담을 주는 것으로, 크리에이터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것” “(망 이용료 의무화법이) 입법화될 경우에는 한국 내 사업 운영 방식을 바꿀 수도 있다”고 했다.

통신 업계 ”망 이용료와 별개” 반박

하지만 국내 통신 업계 측은 ‘캐시서버를 통해 통신사 트래픽 부담을 줄여줬다’는 주장에 대해 “캐시서버 내 콘텐츠가 최종 한국 이용자에게 전달되려면 결국엔 국내 인터넷 망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고 반박한다. 업계 관계자는 “가령 넷플릭스는 캐시서버로 특정 콘텐츠를 한 번 옮기면 작업이 끝나지만, 한국 내 소비자들이 해당 콘텐츠를 이용할 때마다 국내 망에는 소비자 수에 콘텐츠 용량을 곱한 데이터 트래픽이 계속 발생한다”고 했다.

특히 구글이 ‘망 이용료 부과 시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선 “망 이용료 대상은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플랫폼 기업이지, 유튜버나 개인들이 아니다. 구글이 잘못된 정보로 일반인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며 “국내에서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구글이 망 비용을 개인들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 트래픽 56%, 빅테크 차지

해외 통신 업체들도 이 문제를 예의 주시한다. 유럽통신사업자연합회(ETNO)가 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지난해 글로벌 전체 트래픽의 과반(過半)을 빅테크들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20.9%), 메타(15.4%), 넷플릭스(9.4%), 애플(4.2%), 아마존(3.7%), 마이크로소프트(3.3%) 등 6개 기업의 점유율이 56%였다. 특히 유럽 통신 업계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통신 3사 CEO(최고경영자)들은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데이터 폭증 때문에 매년 망 투자 비용으로 약 7억유로(약 9500억원)의 손실을 보는 상황”이라고 공동성명을 내기도 했다.

GSMA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 7월 유럽 7개 통신협회와 함께 빅테크들의 망 투자 기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이달 중 GSMA 지도부가 빅테크를 압박할 수 있는 법안 마련을 EU에 요청할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GSMA는 정부 기관이 임명한 조정자가 빅테크와 통신 업체 간 자율 협상을 먼저 유도하지만, 만약 협상이 잘 안 될 땐 구체적 망 비용을 중재안으로 내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요청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망이용료 의무화법’ 발의에 여야 62명 참여]

현재 국회에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이른바 ‘망이용료 의무화법’(전기통신사업법)은 모두 7건이다. 발의 시점은 지난 2020년 말부터 올 9월까지 제각각이고 세부 내용에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IT 기업들에 의무적으로 통신업체와 망 이용 계약을 체결토록 규정한 것이 골자다. IT 기업들이 망 이용 계약 체결을 부당하게 지연하거나 정당한 이용료 지급을 거부할 수 없게 하면서도, 통신업체가 IT 기업에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을 계약 안에 넣지 못하도록 했다. 또 정부가 실태 조사를 실시해 이를 어긴 통신업체나 기업에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내용도 포함된다.

2건 이상의 법안에 서명한 중복자를 제외하면 발의 의원 수는 총 62명. 현재 21대 국회(총 299명)의 약 21%가 참여했다. 현재 법안 7건 모두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 상정을 거쳐 과방위 산하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에 회부돼있다.

당초 망이용료 의무화법 추진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였던 이재명 현 대표의 공약이기도 했다. 하지만 구글이 지난 9월 말부터 유튜버들을 상대로 반대 여론전에 돌입 후 ‘입법 반대’ 서명자가 27만명을 넘어서자, 국회 내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이재명 대표는 소셜미디어에 “망 사용료법에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는 글을 올렸고, 여당 의원 중에서도 “좀 더 시간을 갖고 검토하자”는 의견들이 나온다. 여기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싼 여야 충돌까지 겹치면서 심사 일정이 잡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