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지난해 184억달러(약 22조22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일본 이커머스의 심장’ 라쿠텐(楽天)의 매출을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1997년 설립된 일본 토종 전자상거래 기업인 라쿠텐은 현지에서 아마존재팬과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기업이다. 회원 수는 1억 2380만명에 달하고, 입점한 온라인 매장은 5만 곳이 넘는다. 쿠팡이 창업 11년만에 아시아 최대 이커머스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대표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위)과 라쿠텐./연합뉴스 라쿠텐

◇1년만에 역전된 韓日 기업의 성적표

쿠팡과 라쿠텐의 매출 규모는 1년만에 역전됐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쿠팡은 2일(현지 시각) 지난해 연간 매출이 184억달러(약 22조2200억원)로 전년 대비 54% 늘었다고 밝혔다. 반면, 라쿠텐은 지난달 14일 지난해 연간 매출이 전년보다 15.5% 늘어난 1조6817억엔(약 17조4557억원)이라고 발표했다. 1년 전인 2020년에만 해도 쿠팡 매출은 13조원대로 라쿠텐(15조원)에 못 미쳤다.

두 기업의 성장 속도 차이가 컸다. 라쿠텐은 지난 2018년 처음으로 매출 ‘10조’ 고지를 돌파하고, 4년간 52% 성장했다. 그러나 쿠팡은 같은 기간 매출 규모를 4배로 키웠다. 쿠팡의 고용 규모도 라쿠텐(2만8261명∙지난해 말 기준)의 2배 이상인 6만 5138명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시장에서 주로 매출을 올리는 쿠팡의 이같은 급성장세가 놀랍다는 반응이다. 마케팅 시장조사 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해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1444억달러로, 한국(1205억달러)보다 높다. 인구로 따져봐도 일본 인구가 한국의 2배 이상이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은 한국 이커머스의 성장률보다 2배 이상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며 “한국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2025년까지 29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미키타니 히로시 라쿠텐 회장. /트위터 캡처

◇쿠팡이 덩치 키운 비결은 ‘배송 속도’

쿠팡과 라쿠텐, 두 회사는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다. 라쿠텐은 전통적인 오픈마켓 모델로, 개별 입점 판매자들에게 배송을 맡긴다. 대규모 물류투자 없이 일본 국영기업인 우정국(우체국)의 배송망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모델은 판매자가 저렴한 가격에 온라인 매장을 오픈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지난 10여년간 일본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라쿠텐 경제권’이란 신조어를 낳았다.

반면 쿠팡은 기업들의 제품을 직매입하고 배송까지 책임지는 ‘아마존 모델’을 구축했다. 2014년부터 로켓배송을 시작해 수도권을 넘어 전국 각지에 로켓배송 물류망을 깔았다. ‘빠른 무료 배송’에 이커머스 성장 동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전국 30개 지역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고, 한국 인구의 70%는 쿠팡 배송센터로부터 10km 이내에 거주한다. 쿠팡의 지난해 1인당 고객 구매액(매출)은 283달러(약 33만원)로 전년 동기보다 23% 증가했다.

쿠팡이 대전에 1800억원을 투자해 프레시 풀필먼트 센터(FC)를 신규 착공한다고 지난 2월 17일 밝혔다. 남대전종합물류단지에 지어지는 풀필먼트 센터는 연면적 9만㎡(약 2만7천평) 규모로, 신선식품 배송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건립된다. /쿠팡

라쿠텐 신화는 배송 경쟁력 부재에서 결국 한계를 맞이했다. 2019년 ‘무료배송’ 정책을 발표하며 이용자가 3980엔(약 4만2000원) 이상 물건을 구매하면 배송비를 내지 않아도 되도록 했지만, 배송비를 부담해야 하는 판매자들의 집단 반발로 철회됐다.

과도한 해외 사업 확장도 발목을 잡았다. 라쿠텐은 자국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 적극적으로 해외진출에 나섰지만 2016년 영국, 스페인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등에서 사업을 철수했고 2020년엔 주력 시장이었던 미국과 독일에서마저 발을 뺐다. 2016년부터는 자국 시장에서 2위였던 아마존재팬에 밀려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줘야 했다. 2020년 기준 아마존재팬의 일본 시장 점유율은 25.7%, 라쿠텐은 12.6%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통신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적자가 심화됐다. 지난해 일본 우정으로부터 1500억엔, 중국 텐센트 657억엔, 월마트 166억엔 출자를 받기도 했다.

◇쿠팡, 덩치 불리다 적자 통제 못했다는 비판도

그러나 쿠팡은 빠른 배송을 위해 공격적 투자를 단행한 만큼 적자 규모도 크다. 지난해 쿠팡의 영업 적자는 역대 최대인 14억9396만달러(약 1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쿠팡의 적자는 2018년 1조1276억원을 정점으로 2019년 7205억원, 2020년 5842억원으로 점차 줄어들었는데 지난해 다시 급증한 것이다.

쿠팡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방역 비용과 쿠팡이츠·쿠팡플레이 등 신사업 투자 비용 때문”이라고 했지만, 시장에서는 지난해 3월 상장까지 한 쿠팡이 언제까지 적자를 감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국내 사업구조상 적자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자체상품 확대 등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하는 움직임이 보인다”면서 “덩치만 크고 실속은 없다는 비판을 면하려면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