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고 나중에 결제하는(BNPL·Buy Now Pay Later) 후불결제 서비스 업체들이 성장통을 겪고 있다.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며 몸집을 빠르게 불리고 있지만, 손실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가치 456억달러(53조원)의 스웨덴의 데카콘(상장 전 기업가치가 10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클라르나(Klarna)’가 대표적이다. 클라르나는 지난 24일 올 상반기 클라르나를 통한 결제량이 작년 상반기보다 53% 늘어났지만, 영업손실은 1년 전보다 2.6배 증가한 17억6147만5000크로나(약 2400억원)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클라르나로 결제하고 제때 돈을 갚지 않는 사람이 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늘어난 것이다. 업체 측은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설명했지만, 일각에선 신용카드보다 가입이 쉬운 후불결제 서비스의 근본 한계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 세계 금융시장 흔든 클라르나
클라르나는 2005년 2월 스웨덴 스톡홀름 경제대학 석사과정이던 1981년생 세바스찬 시미아트코프스키가 동기 2명과 함께 만든 후불결제 서비스다. 본사는 스톡홀름에 있고 현재 전 세계에서 직원 4000명이 일한다.
클라르나는 소비자들이 신용카드가 없어도 무이자 후불로 상품을 구매하게 해준다. 4회 할부나 14·30일 등 정해진 결제일에 연체 없이 돈을 내기만 하면 무이자다. 대신 클라르나는 전 세계에 유치한 25만개의 가맹점을 통해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낸다. 가맹점에서 받는 수수료(5~6%)는 비자나 마스터 등 카드사가 걷는 수수료보다 높다.
신용카드는 신용 등급이 낮거나 일정한 소득이 없을 경우 발급이 어렵지만 클라르나는 서비스 가입만으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소득이 불안정한 MZ세대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며 폭풍 성장했다. 현재 클라르나는 스위스, 영국, 호주, 네덜란드, 미국, 폴란드 등 17개국에 진출했고 9000만명의 활성 사용자를 갖고 있다. 미국 내 사용자만 2000만명에 달한다. 전 세계 일일 거래 건수는 200만건이다.
클라르나는 올 상반기(1~6월)에도 폭풍 성장했다. 클라르나를 이용한 상반기 결제액이 작년 상반기보다 53% 증가한 3280억크로나(44조100억원)에 달한다. 클라르나는 내년 상장을 계획 중이다.
◇만개하는 BNPL 시장
클라르나엔 돈이 몰렸다. 2019년 4월부터 올 6월까지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총 11개의 투자 라운드가 진행됐다. 지난 6월에는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 등에서 7110억원의 투자를 받았고, 기업가치가 456억달러(53조원)로 껑충 뛰었다.
클라르나의 성장과 함께 후불결제 시장은 만개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에 따르면 전 세계 후불결제 시장(후불결제로 인한 수익 기준)은 연평균 22.4% 성장해 2028년 204억달러(23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소비 욕구는 높지만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MZ 세대가 후불결제 서비스를 적극 이용하면서 시장은 팽창하고 있다.
지난 2일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의 결제전문기업 스퀘어는 호주의 후불결제 핀테크 기업인 애프터페이를 290억달러(34조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애플도 골드만삭스와 손잡고 애플페이에 후불결제 시스템을 적용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와 카카오가 후불결제 시장에 진출했다.
◇몸집은 커졌지만 손해는 눈덩이
하지만 서서히 리스크도 드러나고 있다. BNPL 업체들의 매출액과 이용자가 급증하지만 손실도 그에 못지않게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클라르나의 경우 올 상반기 매출인 총이자수익이 1년 전보다 14.2% 증가한 14억9997만크로나(2013억원)였지만 손실은 같은 기간 2.6배가 늘어났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6일 “클라르나가 뉴질랜드, 프랑스, 스페인 등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며 신용 손실이 2배 이상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후불 결제금을 제때 내지 않은 사람이 크게 늘어나면서 적자를 보는 상태라는 말이다.
호주의 애프터페이도 작년 7월부터 올 6월까지의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지만, 손실은 2290만호주달러에서 1억5940만호주달러로 7배 증가했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마케팅 비용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미국의 후불결제 업체 어펌도 올 1분기(1~3월) 매출이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67% 증가했지만, 순손실도 3배 증가했다.
테크 업계에선 새롭게 등장한 후불결제 시스템의 근본적 리스크가 본격화된 것으로 본다. 신용카드보다 쉽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장점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웠지만, 상대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이용자들이 연체할 가능성이 높고 기업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클라르나의 세바스찬 시미아트코프스키 대표는 “클라르나의 성장과 손실 규모를 우려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이 서비스를 빠른 속도로 성장시킬수록 더 많은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후불결제 서비스 업체들이 젊은층의 과소비와 부채 증가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싱가포르 중앙은행과 영국의 금융포럼 ‘고 펀드 유어셀프’는 최근 “BNPL 서비스가 사용자들의 부채 급증과 심각한 신용등급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알리는 캠페인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