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만남 미국의 대표적 빅테크 기업인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태블릿PC, 앱장터 등 여러 분야에서 경쟁을 펼치고 있다. 1980~1990년대 PC 기술을 두고 법정 싸움을 벌인 이후 서로 다른 분야에 주력하다가 다시 경쟁 관계가 된 것이다. 사진은 2007년 미국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만난 스티브 잡스(왼쪽) 애플 창업자와 빌 게이츠 MS 창업자. /위키피디아

미국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첨단 테크 분야에서 새로운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두 기업이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 서비스를 두고 법정 소송까지 가는 신경전을 벌인 이후 한동안 다른 길을 걸었는데, 최근 태블릿PC, 디지털 헬스케어, 앱스토어 등 여러 분야에서 잇따라 맞붙게 되면서 다시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그동안 애플은 모바일(스마트폰·태블릿PC), MS는 PC 운영체제와 클라우드(가상서버)에 각자 주력해왔다.

최근 두 업체의 경쟁 관계가 부각된 것은 MS가 지난 24일(현지 시각) 새 PC 운영체제인 윈도11를 공개하면서다. MS는 연내 출시할 예정인 윈도11에 구글의 스마트폰용 안드로이드 앱을 PC에서도 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윈도 내 앱스토어에선 별도 결제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과도한 앱 결제 수수료로 소송과 반독점 조사에 휘말린 애플을 겨냥한 것이다.

여기에 MS가 애플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시가총액 2조달러(약 2200조원)를 넘으면서 기업 가치에서도 피할 수 없는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두 기업 간 경쟁을 두고 “새로운 테크 전쟁이 재점화됐다”고 평가했다.

◇다시 맞붙는 애플·MS

애플과 MS의 경쟁은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애플)와 빌 게이츠(MS)가 창업 초기에 컴퓨터 운영체제 기술을 두고 벌인 싸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반 잡스는 마우스를 조작해 PC를 이용하는 기술을 처음 시장에 내놓았는데, 이후 MS가 이 기술을 윈도에 탑재하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됐다. 잡스는 MS가 자사 원천 기술을 도용했다며 고소했고, 두 기업의 법정 싸움은 1994년까지 7년간 이어졌다. 껄끄러웠던 두 창업자의 관계는 2011년 잡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 게이츠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아이폰 대신 구글 안드로이드폰을 주로 쓴다”고 했다.

두 창업자가 물러난 이후 최근 10년 동안 두 기업은 크게 충돌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0년대 중반 애플이 MS에 수백억원을 투자하는 등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두 기업 모두 현재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IT 산업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애플과 MS는 다시 경쟁 상대로 만나게 됐다. IT 기술이 일상생활에 폭넓게 사용되면서 주로 기업 고객을 상대로 했던 MS와 소비자 중심인 애플의 격돌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MS는 윈도를 탑재한 태블릿PC 서피스 시리즈를 매년 출시하며 빠르게 시장 1위 애플을 추격하고 있다. MS는 지난 4월 애플의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시리를 개발한 스타트업인 뉘앙스를 160억달러(약 18조원)에 인수했다. MS는 뉘앙스의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해 의사와 환자가 주고받는 구두 상담 내용을 자동으로 기록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애플은 이미 심전도·심박수 측정이 가능한 스마트워치로 관련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앱스토어를 놓고도 두 기업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MS는 지난해 애플이 고객 보호를 내세워 모든 앱에 대한 검증을 의무화하는 규정을 만들자 자사 게임 서비스인 엑스박스를 아예 애플 앱장터에서 빼버렸다. MS는 또 노트북PC에서 애플과 경쟁하고 있는 삼성전자에 노트북에서도 스마트폰용 앱을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지원했다. 애플이 게임업체 에픽게임즈와 앱장터 내 유료결제 의무화를 두고 진행 중인 소송에서도 MS 주요 임원을 에픽게임즈 증인으로 서게 하는 등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메타버스·AI 등 미래 산업도 경쟁

애플과 MS의 경쟁 구도는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두 기업 모두 인공지능(AI),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등 미래 산업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 5년간 AI 기업 25개, MS는 12개를 인수했다.

특히 VR(가상현실)·AR(증강현실)과 같은 메타버스 분야에서는 이미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MS가 지난해 말 머리에 쓰는 VR 기기인 홀로렌즈2를 내놓으며 선수를 치자, 애플은 올해 초 VR 분야 권위자로 꼽히는 더그 보그먼 버지니아공대 교수를 영입하며 관련 R&D(연구·개발) 인력을 300명 이상으로 늘렸다. 애플은 내년 VR·AR 관련 기기를 출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