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성장세가 당초 예측을 크게 뛰어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들은 D램과 낸드플래시 같은 메모리 반도체뿐 아니라 차량용 반도체, 아날로그 반도체 등 모든 반도체 매출 전망치를 일제히 상향 조정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인 인텔의 팻 갤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10년간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파격적인 전망까지 내놓았다. 인공지능(AI)·클라우드(가상 서버)·자율주행차 같은 미래 기술 패권의 핵심인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 계획도 쏟아지고 있다.

16일(현지 시각) 미 CNBC방송 콘퍼런스에서 반도체 시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 /CNBC 홈페이지

◇갤싱어 “반도체 호황 10년 간다”

팻 갤싱어 인텔 CEO는 16일(현지 시각) 미 CNBC방송이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세계는 점점 더 디지털화되고 있고 모든 디지털에는 반도체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10년간 반도체 산업에 좋은 시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 시장은 몇 년을 주기로 호황과 불황 사이클이 반복돼왔다. 5G, 클라우드 같은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면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격이 오르고 호황을 맞았다가, 생산량이 많아져 공급이 안정되면 가격이 폭락하곤 했다. 갤싱어 CEO의 ’10년 호황' 발언은 이런 업계의 상식이 깨질 정도로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장 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이날 올해 반도체 시장의 작년 대비 성장률을 기존 19%에서 24%로 5%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올 초 12%에서 19%로 한 차례 조정한 데 이어 또다시 전망치를 올린 것이다. IC인사이츠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강세가 지속되고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 반도체(GPU), 아날로그 반도체 제품군의 판매도 호황이어서 시장 성장률을 상향했다”고 밝혔다. IC인사이츠는 올해 반도체 제품 평균 판매 단가가 작년보다 2% 오르고, 출하량은 21%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픽=김성규

특히 IC인사이츠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전체 반도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구글·아마존 같은 큰손들이 서버용 반도체 구매를 늘리면서 D램은 작년보다 매출이 41%나 늘고, 낸드플래시도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며 22% 성장한다는 것이다. 올 1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점유율은 71.0%, 낸드플래시는 45.8%에 이른다. 두 회사가 메모리 반도체 호황의 가장 큰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IC인사이츠는 전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도 올해 31%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3월 올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11.2%로 예측했던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도 이달 초 성장률 전망치를 19.7%로 상향 조정했고, 시장조사업체 IDC도 성장률 예상치를 7.7%에서 12.5%로 재조정했다.

◇역대급 투자 쏟아내는 반도체 기업들

역대 최고 수준의 반도체 호황을 맞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 거점 마련과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고 있다. 갤싱어 인텔 CEO는 “연말 이전에 유럽과 미국에 거대한 파운드리(위탁 생산) 라인 건설 계획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인텔은 현재 200억달러(약 22조6000억원)를 투자해 애리조나에 파운드리 라인을 짓고 있는데, 극심한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와 모바일 칩 생산을 위해 추가로 파운드리 라인을 더 짓겠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모바일칩 설계 업체 퀄컴의 크리스티아누 아몬 CEO도 이날 콘퍼런스에 참석해 “미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해 인텔과 파운드리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리조나에 모두 6개의 파운드리 라인을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TSMC는 일본 구마모토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 3위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도 이달부터 16조원을 들여 대만 D램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