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前회장에게 지지와 신뢰의 힘,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에게 명확한 비전의 중요성 배워.”

황창규(왼쪽) 전 KT 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 시절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에게 반도체 신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공사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으로 ‘메모리 반도체 글로벌 1등’ 신화를 이끌었던 황창규 전 KT 회장이 26일 자서전 ‘빅 컨버세이션 : 대담한 대담’을 펴냈다. 이 책에는 그가 삼성전자 사장, 초대 국가 CTO(최고기술책임자), KT 회장을 역임하면서 만난 세계적인 경영인과 석학들에게서 얻은 배움을 담았다. 황 전 회장은 “내가 만난 사람들은 기술 혁신의 현장에서 동반자, 경쟁자였고 때로는 스승이었다”면서 “혼자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교훈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건희 전 회장을 “미래를 위해 과감히 선택할 줄 아는 경영자”라고 회고했다. 2001년,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 12인치 웨이퍼(반도체 원료) 개발과 양산을 고민하고 있을 때 이 전 회장은 “지금 투자를 안 하면 후배들은 언제 1등을 해보고 글로벌 1등을 지킬 수 있겠나”며 결단을 내렸다고 했다. 2000년대 초반 플래시 메모리 세계 최강이었던 일본 도시바가 삼성전자에 기술 제휴를 제의했을 때 ‘독자 개발’을 주장하는 황 전 회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것도 이 전 회장이었다. 1위 사업자와 시장을 나누는 안전한 길 대신 승부수를 던진 삼성은 불과 1년 뒤 도시바를 제치고 독보적인 플래시 메모리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2004년 스티브 잡스와 첫 만남에선 미래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엿보았다고 했다. 당시 황 전 회장은 세계적 히트 상품이던 아이팟에 메모리를 공급하려 이재용 부회장(당시 상무)과 애플 본사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잡스는 당시로선 먼 미래 상품인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TV, 맥북 에어 같은 제품명을 화이트보드에 적으며 자신의 계획을 소개했다. 황 전 회장은 “잡스는 현재 수요의 충족이 아닌, 상상력에 기반해 미래의 수요를 직접 창조하는 데 관심이 있던 인물이었다”고 했다.

황 전 회장을 반도체 공학으로 이끈 교재의 저자이기도 한 앤디 그로브 전 인텔 회장과의 만남을 비롯해 칼리 피오리나 전 휼렛팩커드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창업자와의 일화도 흥미롭다. 메모리 반도체 기술 개발, 평창올림픽에서의 세계 최초 5G(5세대 통신) 시연 등에 대한 뒷얘기도 담겨 있다. 황 전 회장은 젊은 독자들에 대한 조언으로 책을 끝맺었다. “만나고 배우는 데 있어 두려움은 내려놓아야 한다. 실수해도 실패해도 괜찮다.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는 의지만 있다면 언젠가 놀라운 경험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