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T(정보 기술) 기업들의 거침없는 질주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라는 전례 없는 상황 속에서 한국 IT 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며 역대급 실적을 쏟아냈다. 메모리 반도체, TV,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첨단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얻어낸 세계 최고 기술을 적극 활용해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경쟁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신화를 연구하며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제 한국은 과거 선진국의 원조를 받아 굶주림을 달래야 했던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를 호령하는 ‘테크 코리아’로 우뚝 서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가 이끄는 테크 코리아
테크 강국 코리아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들의 오늘은 기업인과 근로자, 과학기술인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 산업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이다. 삼성전자는 1970년대에 반도체가 산업의 중추가 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일본과 미국에서 첩보전을 불사한 끝에 1983년 64K D램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1992년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며 D램 업계 선두에 오른 뒤 반도체 업계의 숱한 변화를 이겨내고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 기업이 됐다. 특히 후발 주자인 SK하이닉스도 한때 회사가 공중분해 될 뻔한 굴곡을 이겨내고 SK그룹에 인수된 뒤 공격적인 투자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회사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합하면 D램은 75%에 육박하고, 낸드플래시도 40%를 훌쩍 넘는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한 만큼 두 회사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와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프리미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판매 금액 기준으로 지난해까지 무려 15년간 세계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OLED TV 판매량이 200만대를 넘어섰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OLED 패널 시장에서 중소형 패널은 삼성디스플레이, 대형 패널은 LG디스플레이가 사실상 글로벌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물론 테크 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 현재의 기술을 밀어내는 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치열한 전쟁터이다. 한국 기업들도 이 같은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시장 선도자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면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대표되는 자국 산업 보호주의는 수출이 주력인 한국 기업들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엄청난 내수 시장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중국 업체들은 반도체와 배터리, 스마트폰, OLED 디스플레이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모든 분야에서 테크 패권을 노리고 있다. 한국이 과거 성공한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을 모방한 중국의 도전은 이미 일부 분야에서는 한국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상황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2위까지 올랐던 화웨이가 사라지자 샤오미·오포·비보 등 다른 중국 업체들이 화웨이의 빈자리를 순식간에 대체한 것만 봐도 중국 기업들의 역량을 실감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은 지식재산권(IP)을 무기로 일본, 대만 같은 동맹국들을 규합해 세계 1강의 위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시대에 부각됐던 자국 우선주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 오히려 더 강화되는 추세이다.
◇미래 전략 준비하는 한국 테크 기업들
후발 주자로 끊임없는 견제와 경쟁을 극복해온 한국 기업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에 만족하지 않고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을 투자해 대만 TSMC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계획을 차근차근 추진하고 있다. 아직은 격차가 크지만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쌓은 초미세 공정 기술력을 활용하면 결코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고 자신하고 있다. AI(인공지능), 클라우드, 자율주행차 등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도 삼성전자에는 절호의 기회이다. SK하이닉스도 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반도체 산업으로 제품군을 확장하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LG전자는 세계적 자동차 부품 회사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합작사를 올해 설립하며 급성장하고 있는 전기차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할 방침이다. 전기차 파워트레인의 핵심 부품인 모터와 인버터에서 경쟁력을 가진 LG전자와 엔지니어링 및 글로벌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는 마그나의 결합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 최초로 5G(5세대) 통신 상용화를 일궈낸 국내 통신 업체들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일제히 ‘탈통신’의 기치를 내걸었다. 스마트폰 가입자 정체 등으로 성장세가 주춤한 상황에서 콘텐츠, 방송, 미디어 등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새롭게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모빌리티 사업을 강화하며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 있고, KT는 ABC(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를 중심으로 비통신 산업 육성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LG유플러스는 VR·AR(가상·증강현실) 콘텐츠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 속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국내 게임 업체들도 올해 신규 게임 출시와 새로운 사업 분야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전력투구할 계획이다. 엔씨소프트는 K팝 팬덤 플랫폼인 ‘유니버스’를 지난 1월 론칭했고 올해 4개의 게임을 내놓을 계획이다. 넥슨은 온라인 게임뿐 아니라 콘솔(게임기)용 게임 시장 공략에 나선다.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해외 비율이 72%를 차지하는 넷마블은 올해도 북미와 유럽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