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프로야구팀 NC 다이노스가 창단 9년 만에 첫 우승을 결정짓자 다이노스 선수들은 서울 고척 스카이돔 한가운데서 거대한 칼을 들어 올렸다. 모회사인 엔씨소프트의 대표 게임 ‘리니지’에서 ‘집행검’이라 불리는 게임 아이템을 모형으로 만들어 우승 세리머니에 활용한 것이다. MVP를 받은 양의지 선수는 인터뷰에서 “리니지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했다.

게임회사가 투자한 야구단이 삼성⋅LG⋅두산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을 모회사로 둔 야구단을 꺾고 정규 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비주류 취급 받던 게임 산업은 야구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주류 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엔씨소프트

◇연 매출 3배 뛰는 동안 야구도 우승

게임 이용자들 사이에서 ‘택진이 형’으로 불리는 김택진 대표가 2011년 NC 다이노스를 창단했을 당시 기존 구단들은 “매출 1조원도 안 되는 기업이 어떻게 야구단을 운영하느냐”며 부정적인 눈으로 봤다. 그러자 김 대표는 “내 재산만으로도 프로야구단을 100년은 운영할 수 있다”며 창단을 밀어붙였다. 김 대표는 40억원을 투자해 다이노스를 창단했는데 지금은 한 해에 150억~200억원을 투자한다고 한다.

프로야구단 창단 당시 연 매출 6000억원대였던 엔씨소프트는 올해 첫 2조원 매출을 바라보고 있다.

특히 엔씨소프트는 올해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비대면) 특수를 누렸다. 3분기(7~9월) 매출은 작년보다 47% 늘어난 5852억원, 영업이익은 69% 늘어난 2177억원이었다. 올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1조8548억원으로 작년 한 해 매출(1조7012억원)을 이미 넘었다. 올해 영업이익 1조원 돌파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엔씨소프트의 대표 상품은 ‘리니지’다. PC와 모바일을 넘나드는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MMORPG) 리니지 지식재산(IP)을 활용한 게임이 엔씨소프트 게임 매출의 75% 정도를 차지한다.

우승 샴페인 - 24일 서울 구로구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에서 NC 다이노스 구단주인 김택진(가운데) 엔씨소프트 대표와 황순현(왼쪽) NC다이노스 대표, 이동욱 NC 다이노스 감독이 2020 KBO 리그 통합 우승을 기념하는 샴페인을 들고 있다. 김택진 대표는 "만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NC 다이노스

◇종합 콘텐츠·인공지능 업체로

엔씨소프트는 게임뿐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2013년 12월부터 웹툰 플랫폼 ‘버프툰’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를 오디오북·웹소설 등 콘텐츠로도 확장했다. 2018년엔 시각 특수효과 전문 기업 ‘포스크리에이티브파티’에 220억원을, 지난해엔 영화 투자 배급사인 ‘메리크리스마스’에 100억원대 투자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 제작 기술 확보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 엔씨소프트의 R&D(연구·개발) 투자액은 2275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800억원 늘어났다. 엔씨소프트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은 18.5%로 국내 500대 기업 중 R&D 비용을 공시한 208곳 가운데 다섯째로 많다. 특히 인공지능(AI) 연구에 적극적이다. 엔씨소프트에서 AI를 연구하는 전문 인력만 200여 명에 달한다. 엔씨소프트는 AI 기술을 게임 서비스에 활용할 뿐 아니라 머신 러닝을 통해 기사를 쓰는 ‘AI 기자’를 개발했고, KB증권⋅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 등과 손잡고 AI가 투자 조언을 하는 디지털 증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가 언젠가부터 게임 개발사 이미지를 넘어서서 종합 콘텐츠와 인공지능 개발 업체로 거듭나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한국 게임 ‘3N’ 매출 7조

올해 국내 게임 업체는 코로나 영향으로 큰 호황을 누렸다. 엔씨소프트와 함께 국내 3대 게임사로 꼽히는 3N(엔씨소프트⋅넥슨⋅넷마블)이 연 매출 7조원을 합작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넥슨은 올 3분기까지 누적 매출 2266억엔(약 2조4001억원)을 기록하면서 작년보다 14% 늘어났다. 지난 7월 출시한 모바일 게임 ‘바람의 나라:연’이 크게 흥행했고, ‘FIFA 모바일’ 등 모바일 게임이 꾸준한 인기를 끌면서 실적을 견인했다. 지금 추세대로면 작년에 이어 연 매출 3조원 달성이 유력하다.

넷마블도 올해까지 4년 연속 연 매출 2조원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 18일 출시한 모바일 게임 ‘세븐나이츠2’가 출시 3일 만에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3위에 오른 데다, 넷마블 북미 자회사인 카밤이 출시할 예정인 모바일 게임 ‘마블 렐름 오브 챔피언스’도 해외 흥행이 예상된다.

‘배틀 그라운드’라는 세계적인 히트작을 보유한 크래프톤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이 6813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배 넘게 뛰었다. 기업 공개(IPO)를 추진하고 있는데, 시가총액이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검은사막’을 개발한 펄어비스도 올해 PC⋅모바일⋅콘솔 출시를 마무리했고, 지역 확장도 마무리돼 3분기 누적 매출은 다소 주춤했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나 올랐다.

게임 산업의 약진으로 국내 게임사 시가총액 100조원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통적인 대기업이 게임 산업을 따라 배워야 하는 시대라는 얘기도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교수)은 “대기업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는데, 그 흐름에 앞서가는 게임 산업을 보면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