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을 보면 한국은 가상 자산 산업에서 아직 발도 못 뗀 수준입니다. 그동안 투자자 보호에 대한 규제 논의는 충분히 이뤄졌습니다. 이제는 가상 자산 산업의 진흥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기입니다.”
김준우 쟁글 공동 대표는 빠르게 변화하는 가상 자산 산업에서 한국의 현주소를 이같이 짚었다. 쟁글은 가상 자산 프로젝트의 토큰 발행 구조, 유통량 변화, 주요 의사 결정 등을 표준화해 제공하는 가상 자산 공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전자공시와 같은 역할이다. 쟁글은 온체인 데이터(On-chain Data·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발생하는 모든 거래 기록과 관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금융기관의 가상 자산 운영과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인프라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김 대표는 2018년 11월 쟁글 운영사 크로스앵글의 공동 대표 및 공동 창업자인 이현우 대표와 함께 쟁글을 설립했다. 그는 증권사 트레이더로 근무하다 삼성전자 기업전략부로 옮겨간 뒤 넥슨게임즈 지주회사인 NXC에서 투자와 사업 개발 전문가로 활동했다. 크로스앵글 창업 전 NXC의 벤처투자사인 NXVP의 대표이사로, 가상 자산 관련 투자와 사업 거래를 수행하기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일문일답.
─10년 간 가상 자산 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느끼는 변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가상 자산의 규제 명확성이 생겼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이전까지는 해도 되는 일과 안 해도 되는 일의 구분이 없었다. 기존에는 모든 사업이 기술 검증(PoC·Proof of Concept) 실험에 그쳤다면, 규제의 명확성이 생긴 이후 가상 자산 사업자들이 실험에서 검증된 모델을 경제적으로 규모를 확대할 수 있게 됐다.
그 예시가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iShares Bitcoin Trust) 같은 상장지수펀드(ETF·Exchange Traded Fund)다. 금융권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신청하고, 스테이블코인 상품을 출시할 수 있는 것도 규제가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상 자산 시장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도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변화가 시작됐다."
─기관 투자자의 가상 자산 시장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기술 기업이 블록체인의 혁신을 주장하고 그 쓰임새를 강조했다. 이제는 금융 산업이 주체가 돼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을 이용해 산업 혁신을 이끌어가는 구조로 바뀌었다. 대형 금융사의 자본이 가상 자산 산업에 유입되면서 더 이상 블록체인 기술이 얼마나 혁신적이고, 돈이 되는 산업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가상 자산 관련 법이 생기기 전에 기술 기업들이 하나의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지금은 소비자에게 매력 있는 상품을 고민하는 시대로 변했다.”
─앞으로 가상 자산 산업이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나.
“혁신 기술이 등장하면 기업들은 우선 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이용해 어떻게 돈을 벌지 고민했다. 블록체인 사업도 비슷한 흐름이다. 초창기 대체 불가 토큰(NFT·Non-fungible token)이 어떤 매력을 가졌는지 모르지만, 우선 만들고 보자는 식이었다.
지금은 가상 자산 산업의 구조 변화가 기술 주도에서 기업 주도로 바뀌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초입 단계다. 산업의 진흥은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이 출시된 이후 많은 기업이 짧은 시간 안에 비슷한 상품을 출시한 것처럼 이뤄질 것이다. 미국에서 클래리티 법안(Clarity Act) 통과를 앞둔 가운데, 향후 스테이블코인을 상업적으로 사용하게 될 미래도 머지않았다."
클래리티 법안은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화법(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 of 2025)’으로 가상 자산이 어느 기관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정해주는 법안이다.
─미국 규제 변화에 대한 해석과 전망은.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면, 가상 자산 산업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작년 6월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을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은 이견 없이 통과시켰다. 이유는 달러 패권을 강화한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 달러는 전 세계 99%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두 정당은 디지털 달러가 성공하면 미국의 달러 패권도 강화될 것으로 본다. 향후 미국에서 나올 법안도 달러의 절대적인 권위를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상 자산 산업은 더욱 진흥하고, 규제 도입은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이다.”
─한국은 그 변화 속에서 어디쯤 있나.
“한국은 아직 발도 못 뗀 상태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 만에 스테이블코인 법안이 통과됐다. 한국은 투자자 보호 등 공공성 차원에서 위험 요소를 어떻게 없앨지 고민하지만, 미국은 다소 위험이 있더라도 가상 자산 산업을 어떻게 진흥시킬지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투자자 보호에 대한 규제 논의는 충분히 이뤄졌다. 이제는 가상 자산 산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