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들이 유사한 구조의 상장지수펀드(ETF)를 앞다퉈 출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 투자하는 채권혼합형 ETF가 연이어 출시되면서, 상품 차별성은 떨어지고 증시의 ‘쏠림 현상’만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자산운용은 ‘KODEX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 ETF를 지난 7일 신규 상장했다. 해당 상품은 자산의 절반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최대 25%씩 투자하고, 나머지 50%는 국고채 등 국내 우량 채권으로 구성한 상품이다.
앞서 KB자산운용은 유사한 구조의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 ETF를 지난 2월 26일 상장했다. 두 상품 모두 반도체 대형주와 채권을 결합한 채권혼합형 ETF라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한 투자 전략을 취하고 있다.
임태혁 삼성자산운용 ETF 운용본부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은 기존 ‘KODEX 삼성전자채권혼합’이 인기를 끌면서 후속 상품으로 준비한 것”이라며 “단순 출시 시기가 겹쳤을 뿐 상품 개발에서 상장까지 3개월 정도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먼저 출시한 상품을 베꼈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여기에 키움투자자산운용도 참전했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은 지난 6일 ‘KIWOOM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 ETF의 상품 코드 등록을 마쳤고 이달 21일 상장을 앞두고 있다. 하나자산운용도 오는 14일 ‘1Q K반도체TOP2채권혼합50’를 출시한다. 상품 이름은 조금 다르지만 ‘반도체 투톱’ 비중을 50%로 가져간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구조다.
키움투자자산운용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25%씩 투자하고 나머지는 채권을 담는 구조는 동일하다”며 “다른 운용사의 비슷한 상품들을 대비해서 장기 투자에 적합하게 차별화된 포인트를 더하겠다”고 말했다.
유사한 구조의 ETF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일부 운용사는 낮은 보수를 앞세워 경쟁에 나서고 있다. KB자산운용과 하나자산운용은 총보수 연 0.01%의 저보수 전략을 내세웠다. 반면 삼성자산운용과 키움투자자산운용은 후발주자이지만 0.07%로 경쟁사보다 0.06%포인트(P) 높은 총보수를 제시했다.
앞서 한국거래소는 ETF 상품 모방을 줄이고자 독창적인 상품에 대해서는 6개월간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하는 ‘상장지수상품(ETP) 신상품 보호 제도’를 2019년부터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다만 해당 제도를 통해 보호를 받은 사례는 삼성증권의 ‘삼성 KRX 금현물 ETN’ 1건이며, 지난 2024년 2월 제도 개편 후에는 신청한 자산운용사가 한 곳도 없다.
거래소는 다양한 테마가 등장하는 최근 ETF 시장의 특징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제도 운영이 어려운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시총 규모가 크기 때문에 다른 테마로 ETF를 구성해도 삼성전자가 일단 포함되면 결과적으로는 구조가 동일해지는 경우가 있다”며 “운용사 입장에서도 다양한 테마의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 실익이 낮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ETF가 우후죽순 출시된 이후, 인기가 떨어진 상품은 사실상 방치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ETF 시장은 진입은 쉽지만 부실 종목 관리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며 “인기가 떨어진 상품은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의 스프레드(차이)가 넓어져 원하는 가격에 거래가 어려워지거나, 괴리율이 확대되어 투자자들이 혼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거래소 관계자도 “ETF 상품들끼리 겹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장 심사 과정에서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