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이자 이익 모델이 한계에 부딪히며 금융지주 내 증권사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지만, 지주사별 증권 경쟁력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문별 고른 성장에 공격적인 자본 확충까지 나선 KB증권이 독주 체제를 굳히는 반면,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은 선두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우리금융지주의 우리투자증권 재출범으로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모두 증권 진용을 갖추게 되면서, 금융지주 소속 증권사 간 차이가 더 선명해지고 있다.

기존 이자이익 중심 모델의 한계가 분명해진 만큼, 자산관리(WM)와 투자은행(IB)을 축으로 한 증권 경쟁력이 향후 ‘리딩 금융사’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래픽=손민균

4개 금융지주사 중 증권을 중심으로 한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가장 공격적으로 확장한 곳은 KB금융그룹이다. 현대증권을 인수하면서 일찌감치 체급을 키운 KB증권은 지주회사의 자본 지원을 등에 업고 IB와 WM 분야에서 균형 잡힌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KB금융지주는 10년 만에 KB증권에 대한 7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상증자가 완료돼 자기자본이 8조원 가까이 높아지면, KB증권은 한국투자증권·미래에셋증권·NH투자증권에 이어 네 번째로 규모가 큰 초대형 증권사로 올라서게 된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은 KB증권 워크숍에서 “최근 자본시장으로의 머니무브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증권사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하며 비이자 수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신한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의 증권 부문은 그룹 내 존재감이 미미하다. 최근 거래대금 급증으로 이익은 늘었으나, 성장 속도는 KB증권과 격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KB증권의 순이익이 7000억원에 육박한 반면, 신한투자증권과 하나증권의 순이익은 각각 3800억원, 2000억원에 그쳤다.

이들 모두 대형 은행 계열이라는 든든한 기반을 갖추고 있어 WM 부문에서는 차이가 크지 않지만, IB 부문에서 격차가 뚜렷했다. 은행이라는 보수적인 조직이 여전히 중심인 금융그룹에서 증권이 자본시장에서 본연의 역할을 하기보다 안정 위주의 운용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한투자증권은 잇따른 금융 사고로 내부통제 이슈가 부각되면서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제약을 받고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해 연임이 결정된 직후 “2026년에는 자본시장을 그룹 차원의 중요한 축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내부통제와 신뢰는 지속가능한 금융의 핵심”이라는 데 방점을 실었다.

하나증권은 그룹 내 입지가 훨씬 적다. 증권의 캐시카우로 불리는 IB와 WM 분야 모두에서 뚜렷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지 못해 시장 확대 국면에서 증권의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우리 자본시장이 이례적인 호황을 보였지만, 하나증권의 체급 정체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 시내에 설치된 시중은행 ATM 기기 모습./뉴스1

증권사 간 체급 차이는 금융지주사 전체의 순이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KB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이 5조8430억원으로 4대 금융지주사 중 1위를 기록했고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순이익은 각각 4조9700억원, 4조원으로 뒤를 이었다.

은행 계열사인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의 순이익이 각각 3조7000억~3조8000억원 안팎으로 비슷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권 등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 차이가 그룹 전체의 실적 격차를 벌린 것이다.

그룹 전체 순이익에서 증권을 포함한 비은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KB금융이 33.9%에 달하고, 신한금융은 24.1%, 하나금융은 6.4%에 불과하다.

오히려 후발주자인 우리투자증권이 빠른 추격에 나서고 있다. 2024년 7월 우리종합금융과 한국포스증권의 합병을 통해 출범한 우리투자증권은 출범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IB와 WM 등 빠르게 진용을 갖추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의 자기자본은 1조2000억원, 지난해 순이익이 270억원으로 아직 다른 증권사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다만 우리금융지주는 증권 규모를 키우기 위해 1조원 규모의 단계적인 유상증자 계획을 내놓았고, 은행의 인수금융 조직을 여의도로 옮기면서 우리투자증권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