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투자자 유치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실제 투자보다 경품만 챙기는 이른바 체리피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도한 현물성 이벤트가 쏟아지면서 해외 자금의 국내 유입이라는 제도 본연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RIA는 해외 주식을 매도한 뒤 원화나 국내 주식에 재투자하고, 이를 1년 이상 유지할 경우 해외주식 양도소득세를 일정 부분 감면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지난달 23일 출시된 후 현재까지 20여 곳의 증권사들이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RIA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처럼 증권사별로 1개씩 개설할 수 있다. 당초 정부는 1인당 1계좌로 제한하려 했으나 투자 편의를 위해 이를 완화했고, 체리피커들은 이 점을 노려 여러 증권사를 돌며 리워드를 챙기고 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체리피커들은 계좌 개설만으로도 현금성 지원금이나 주식 매수 쿠폰을 지급하는 증권사를 주로 공략한다. 특히 단기간 다수 계좌 개설 제한을 두지 않는 곳이 주 타깃이다. 이 제한은 20영업일 이내에 계좌를 신설하면 타 금융기관에서의 추가 개설을 막는 규정으로 지난 2020년 공식 폐지됐다. 현재는 일부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운영 중이다.

출시 직후 많은 관심을 끈 곳은 한국투자증권이다. 계좌 개설만 해도 축하금 1만원을 지급하고, 가입할 때 3000만원 한도 설정을 해두면 스타벅스 커피 쿠폰도 제공한다. 또 타사 해외주식을 입고하면 금액(100만~4000만원 이상)에 따라 5000원에서 최대 10만원까지 현금도 준다.

실제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26일 RIA 출시 3일 만에 가입자 1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현재 축하금 이벤트는 선착순 마감된 상태다. 계좌 개설 시 주식 상품권 2만원을 주던 LS증권도 약 일주일 만에 이벤트를 조기 종료했다.

여러 곳에서 동시 가입이 되다 보니 NH투자증권(선착순 5만명 1만원), 삼성증권(선착순 2만명 스타벅스 쿠폰·해외주식 매도액 구간별 5000~3만원), 미래에셋증권(선착순 3만3000명 1만원), 키움증권(계좌 개설 2만원·500만원 이상 납입 시 5만원 매수 쿠폰), 신한투자증권(계좌 개설 5000원·거래시 5000원 금융투자상품권), 유진투자증권(계좌 개설 메가커피 쿠폰·순매수 구간별 1만~5만원 신세계상품권) 등도 체리피커들이 몰리고 있다.

잔고 구간별 리워드가 큰 증권사들은 KB증권(해외주식 매도액 구간별 5000~21만원 주식 쿠폰), 대신증권(해외주식 입고 시 5000원·지원금 100명 추첨 10만~50만원 랜덤 지급), 유안타증권(잔고 1000만원·3000만원당 캐시백 1만·3만원) 등이 언급된다.

이 같은 경쟁 속에 메리츠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골드바와 금화 등 고가 경품까지 내걸며 이벤트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달 23일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를 출시하고, 해외주식 매도 후 국내 투자에 나서는 고객을 위한 다양한 수수료, 환전, 경품 혜택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한국투자증권 제공

체리피커 사이에선 ▲위탁계좌 등 다른 계좌를 같이 개설하면 20일 제한이 있으니 RIA만 가입 ▲타사 주식 입고를 통한 리워드 극대화 ▲혜택이 큰 증권사 중심으로 한도 분산 등의 전략도 공유되고 있다.

양도소득세 부담이 없는 일부 투자자는 가격 변동성이 낮은 단기채 상장지수펀드(ETF)를 산 뒤 이벤트 조건 충족 후 매도·해지하는 방식을 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대부분 증권사가 오는 5~6월까지 계좌 및 잔고를 유지할 것을 이벤트 조건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만기가 있는 은행 예금보다 수익률은 높으면서 언제든지 사고팔 수 있고, 동시에 증권사 혜택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실제로 RIA 도입 후 8거래일간 국내 주요 단기채 ETF인 ‘KODEX 머니마켓액티브’, ‘TIGER 단기채권액티브’, ‘RISE 머니마켓액티브’의 일평균 거래량은 도입 직전 8거래일 대비 10~24% 증가했다.

계좌 수 증가 속도에 비해 자금 유입은 제한적이다. 국내 자기자본 상위 증권사 10곳에서 지난달 31일까지 개설된 RIA 계좌 수는 약 5만7000개지만, 자금 유입은 3300억원 규모로 서학개미(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 미국 주식 보유액(약 223조원)의 0.15% 수준에 그쳤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출시 초기에는 이벤트를 통해 고객을 유치할 수 있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RIA에 자금을 투자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