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는 1500원을 이미 넘어섰다. 지정학적 리스크를 감안해도 환율이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향후 환율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중동 전쟁 상황과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른 자금 유입, 4월 외국인 배당 송금 등을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501.3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은 지난달 18일 처음으로 1500원을 돌파한 이후 상승세가 이어졌다. 지난달 31일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30원을 넘기도 했다.
환율 급등의 직접적인 배경은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다. 이란 전쟁 여파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되며 달러 수요가 확대됐고, 동시에 원화 가치가 빠르게 약세를 보였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이번 전쟁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봉쇄되면서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외환시장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고 설명했다.
국내 증시 상승에 따른 외국인 포트폴리오 조정도 환율 상승 요인으로 꼽힌다. 위재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현 레벨은 지정학 리스크를 감안해도 오버슈팅(과도하게 오른 상태) 구간”이라며 “국내 주식시장이 연초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양호한 성과를 보였던 만큼 분기 말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영향도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3월 한 달간 약 36조원을 순매도했다.
실제로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비슷한 대만, 일본과 비교해도 원화 약세는 두드러졌다. 원화가 3월 한 달간 6.7% 수준의 약세를 보일 동안 대만달러는 2.7%, 엔화는 2.3% 약세를 보였다.
특히 이번 환율 상승은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 확대 때문이 아니라 외국인 수급 변화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위 연구원은 “중요한 부분은 외환 시장의 수급 플레이어가 교체된 점”이라며 “작년 말 환율 상승을 주도했던 내국인 해외 투자 수요는 현재 주춤하고 있어 외국인의 순환적 매도 조정이 끝나면 환율 상승 압력이 완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달에는 추가로 주목해야 할 수급 변수가 있다. 한국이 WGBI에 편입되면서 1일부터 원화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월간 약 4조7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국내 채권시장으로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전날 WGBI 편입 이후 원·달러 환율은 약 30원 가까이 하락하기도 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방송 인터뷰를 통해 “WGBI 편입으로 외국 달러 자금이 들어와서 한국 국채를 많이 사게 되면 환율이 안정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외국인 배당 역송금은 원화 수요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4월은 국내 상장사의 결산 배당 지급이 집중되는 시기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배당금 본국 송금 수요가 발생한다.
위 연구원은 “코스피 상장사들의 올해 결산 배당 규모는 약 40조원 수준이고, 이 중 외국인 지분율 약 32%를 감안하면 4월에 약 12조원의 외국인 배당이 예상된다”며 “4월 한 달은 외국인 배당 송금 규모가 WGBI 유입액을 상회해 당분간 원·달러 환율의 하락 압력이 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환율 방향은 중동 전쟁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 연구원은 “환율 안정의 선결 조건은 중동 전쟁 상황의 완화”라며 “4월 중 종전을 가정할 경우, 1530원 선에서 고점을 형성한 뒤 1440원을 하회하는 급격한 되돌림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