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뉴스1

영풍이 고려아연과 최윤범 회장 등 경영진들을 대상으로 제기한 주주대표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열린 가운데, 법원이 손해 발생 여부와 선관주의 의무 위반 판단은 별개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고려아연 의사결정 과정 검증을 위한 증거 확보 필요성에 무게를 실어준 셈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부장판사 고승일)는 2일 영풍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4005억원 규모의 주주대표 소송의 첫 변론기일을 열고 주요 쟁점과 문서제출명령 신청 범위를 심리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안의 쟁점은 선관주의 의무 위반 여부”라고 설명했다. 개별 투자 성과나 손실 확정 여부보다 당시 의사결정 과정에서 요구되는 주의의무 이행 여부가 판단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취지다. 이어 “손해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선관주의 의무 위반 입증 자체를 제한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언급하며 영풍 측 주장에 일정 부분 힘을 실었다.

핵심 쟁점으로는 문서제출명령 인용 여부가 부상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신청한 사실조회 및 문서제출명령에 대해 “쟁점 판단을 위한 배경사실로 볼 수 있다”며 필요성을 일부 인정했다.

영풍 측은 이날 재판에서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 투자와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등을 두고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한 ‘묻지마 투자’”라고 주장하며 공세를 이어갔다. 투자 및 인수 과정에서 합리적 검토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사회 보고·승인 절차, 투자 검토 자료, 계약 체결 경위 등 내부 자료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펀드 투자 의사결정 구조와 담당자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며 사실조회에 대한 고려아연 측 회신을 문제 삼았다. 이어 강제력 있는 문서제출명령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 진행 중인 디스커버리 절차 역시 본 소송과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지연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최 회장 등 고려아연 경영진 측은 선관주의 의무 위반 자체를 전면 부인했다.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에 대해서는 “여유 자금을 활용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경영 판단”이라고 주장했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관련 법령과 내부 절차를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이그니오홀딩스 인수와 관련해서도 투자심의위원회 등을 통해 충분한 검토를 거쳤으며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반박했다.

이번 소송은 ▲원아시아파트너스 펀드 투자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씨에스디자인그룹 계약 등 세 건의 거래를 대상으로 한다. 영풍 측은 이들 거래가 이사회 승인 없이 진행되거나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이뤄져 회사에 손해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원아시아파트너스 투자와 관련해서는 경영진의 사적 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재판부는 양측에 10일 내 추가 서면 제출을 명령하고, 영업비밀 및 개인정보 해당 여부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다음 변론기일까지 문서제출명령 범위를 둘러싼 법리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다음 변론 기일은 6월 18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