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 상장을 추진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디스카운트(저평가) 탈출’ 기대와 ‘물량 폭탄’ 우려라는 상반된 분석이 나오고 있다.

ADR이 발행되면 SK하이닉스도 미국 마이크론과 같은 미국에 상장한 반도체 업체와 비슷한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한편 기존 주식 가치가 희석될 거란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 것이다.

ADR은 미국에서 발행된 예탁증서(DR·Depositary Receipt)로, 국내 기업 주식을 해외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발행하는 대체 증권이다. 국내 기업이 주식을 국내 보관 기관에 예치하면 이를 기반으로 해외 예탁 기관이 예탁증서를 발행·유통시킨다. 주식을 해외 시장에 상장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SK하이닉스 본사. /뉴스1

SK하이닉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ADR 상장을 위한 공모 등록 신청서를 비공개로 제출했다고 지난 25일 밝혔다. 연내 ADR 상장이 목표이지만, 공모 규모나 방식·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를 맞아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25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와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재무 체력이 필수”라며 “안정적인 투자를 위해 순현금 100조원 이상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SK하이닉스의 순현금 규모는 12조6000억원였다. 약 87조원을 추가로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2050년까지 약 600조원을 들여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충북 청주와 미국 인디애나주에 각각 39조원, 5조원을 투자해 공장을 짓는 만큼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SK하이닉스가 미국에 ADR을 상장하면 국내 주식에 어떤 영향이 미칠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는 미국 ADR 상장 이후 국내 주식의 가치도 재평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추정 주가수익비율(PER)은 5.9배로, 미국에 상장한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과 샌디스크의 PER 7.8배, 17.6배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자본이 풍부한 미국 시장에 SK하이닉스가 상장되면 마이크론이나 엔비디아 등 AI 빅테크와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이 멀티플(주가 배수)을 더 잘 받고 있는 이유가 혹시나 상장된 국가 때문이라면 미국에 SK하이닉스가 상장됐을 때 밸류에이션 갭을 줄이거나 더 잘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ADR이 상장되면 SK하이닉스의 멀티플이 프리미엄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했다.

강다현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ADR 상장은 글로벌 패시브 자금의 접근성을 확대해 한국 주식의 재평가를 자극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ADR 주식은 국내 주식과 교환이 가능하다”며 “TSMC의 경우 ADR 상장 주식이 30% 정도 높게 형성돼 있는데 SK하이닉스도 본주보다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거래된다면 해외 주식과 국내 주식 교환 과정에서 본주도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주주들 사이에서는 주식 가치 희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번 주총에서 한 개인 투자자는 “이미 자사주 소각을 했으니 ADR 발행을 위해 신주를 발행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도 신주 발행을 통한 ADR 상장이 추진될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지난달 전체 주식의 2.1% 규모에 달하는 약 12조원의 자사주 소각을 진행하며 남은 자사주가 없는 만큼 신주 발행을 통한 ADR 상장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상법 개정안에는 ‘자사주 매입 시 소각 의무화’ 조항이 포함돼 있다”며 “SK하이닉스가 해외 신주 발행을 통해 ADR을 추진하는 것은 이런 정책 방향에 대응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 최대 주주인 SK스퀘어의 지분 유지를 감안해 신주가 약 10조~15조원 규모로 발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신주 발행을 통해 ADR을 상장하더라도 신규 주주 환원 정책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 연구원은 “주주 가치 제고 노력이 요구되는 현재 사회·정치적 구조에서 SK하이닉스가 주주 가치 제고 목적에 부합하려면 신주 발행에 따른 현금 유입 금액을 오롯이 주주 환원에 사용하리라 예상한다”며 “ADR 발행 세부 조건이 발표되기 전 다양한 자사주 매입이나 소각 계획 또는 대규모 배당 계획이 도출되리라 추정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