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재선임에 또다시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국민연금은 ‘기업 가치 훼손에 대한 감시 의무 소홀’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재계에서는 “성공적인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역대급 실적이라는 경영 성과를 철저히 외면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국민연금이 과거의 잣대에 갇혀 현 경영진의 리더십을 과도하게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인 수치나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감시 소홀’이라는 모호한 기준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공적 연금을 활용한 ‘경영권 압박‘이자 ‘관치금융’의 변주라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24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총 안건인 조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과 대한항공 주총 안건인 우기홍 대표이사의 사내이사 선임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한진칼은 대한항공의 지주사다. 국민연금은 “기업 가치 훼손·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점을 반대 사유로 제시했다.

국민연금은 반대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과거 대한항공 총수 일가(家)의 논란과 경영권 분쟁 등 지배 구조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해 국민연금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점도 이번 결정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앞서 국민연금은 2019년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의 사내 이사 연임안에 반대했다. 이 연임안은 주총에서 부결됐다. 2021년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 과정에서의 실사 미실사와 불리한 계약 우려 등을 이유로 조원태 회장과 일부 이사·감사위원 선임에 반대했다. 2024년에도 조 회장의 사내 이사 선임에 반대했다.

재계에서는 조 회장의 경영 성과를 고려할 때 감시 의무 소홀이라는 모호한 규정으로 경영권을 지나치게 흔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 회장은 2019년 조 전 회장 별세 이후 한진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아시아나항공 인수라는 대형 거래를 성사시키고 코로나19 기간에도 대한항공의 흑자 기조를 유지하며 시장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보수를 수령한 건은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조 회장 취임 이후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합병으로 인한 규모의 경제, 시장 지배력 확대 등과 호실적을 감안하면 전반적으로 경영을 잘 해왔다는 평가가 우세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설명 없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은 이사 보수 한도 안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연금은 “보수 한도와 실제 지급 금액이 경영 성과에 비해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조 회장은 지난해 한진칼과 대한항공, 진에어, 아시아나항공 등 4개 계열사에서 총 145억7800만원을 수령했다. 이는 한진그룹 역사상 개인 기준 최대 보수다.

반면 실적은 전년 대비 감소했다. 한진칼의 매출액은 2984억원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영업이익은 2024년 675억원 흑자에서 지난해 75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1.2% 증가한 25조2255억원이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7.2% 감소한 1조1136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실적 흐름 자체는 여전히 견조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위원은 “대한항공의 영업이익 감소는 2025년부터 아시아나항공 실적이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되면서 적자가 포함된 영향이 크다”며 “그럼에도 최근 실적은 대한항공 역사상 상위권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민연금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무난히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조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가 약 20.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지원했던 한국산업은행 역시 우호 지분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호반건설이 약 18.7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변수로 꼽히지만, 단순 투자 목적의 지분 보유라는 점에서 경영권에 직접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