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4일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제52기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 개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제 표결 기준을 둘러싼 공방이 격화되며 공정성 논란이 벌어졌다. 고려아연 측이 지난해 주총에서 적용한 기준과 다른 방식으로 표결을 진행하려고 하면서다.

논란의 핵심은 해외 기관투자자의 ‘과소표결’(일부 후보에만 의결권을 행사하는 경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있다. 집중투표제에서는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이 배수로 부여되는데, 일부 외국인 주주는 특정 후보에만 표를 행사하면서 미행사 의결권이 발생한다. 이 잔여 의결권을 그대로 둘지, 아니면 비례적으로 재배분할지에 따라 최종 득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주총에서 예탁결제원 집계 기준을 그대로 반영해 실제 행사된 표만을 인정하고, 미행사 의결권은 별도로 재배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주총에서는 기존 입장을 바꿔, 과소표결된 의결권까지 포함해 전체 의결권이 행사된 것으로 간주한 뒤 비례 배분하는 ‘프로라타(pro rata)’ 방식을 적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에 대해 영풍 측은 주총 현장에서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영풍 측은 “사전 검사인 룰 미팅에서 예탁결제원을 통한 외국인 의결권 중 과소표결이 있을 경우 이를 그대로 반영하기로 했는데, 회사가 돌연 입장을 바꿨다”며 “이는 이미 확정된 기준을 뒤집는 것으로 위법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국인 주주가 특정 후보자에게만 찬성표를 행사한 것은 해당 후보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사 표현이며, 나머지는 기권 의사로 봐야 한다”며 “이를 사후적으로 비례 배분하는 것은 주주 의사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풍 측은 해당 표결 방식이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직무집행정지 등 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외국인 의결권 행사의 구조적 한계를 고려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회사 측 변호인은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시스템상 의결권을 정확히 배분하지 못해 일부만 행사된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이는 주주의 의사라기보다 시스템 결함에 따른 결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측은 예탁결제원 집계 수치와 이를 보정한 수치를 모두 종합해 검사인에게 제출하고, 최종 판단은 법원의 판단을 통해 가리겠다는 방침이다. 회사 측은 “일단 회사 방침에 따라 표결을 진행하되, 향후 법원의 판단에 따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단순한 해석 차원을 넘어, 이사회 구성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핵심 변수라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에서는 수백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릴 수 있어 표결 기준 자체가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며 “전년도 기준을 상황에 따라 변경하는 것은 절차적 일관성과 주주평등 원칙 측면에서 문제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가 일부 의결권만 행사하는 것은 투자자의 선택 영역”이라며 “이를 사후적으로 재해석해 재배분하는 것은 의결권 행사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