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재선임 안건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19일 결정했다. 주주가치 훼손을 내세워 기존 경영진 안건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이날 제5차 회의를 열고, 오는 24일 열리는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논의했다. 그 결과 최 회장과 황덕남·박병욱 이사 후보 선임 안건에는 ‘미행사’, 김보영·이민호 감사위원 후보 선임 안건에는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수탁위는 해당 후보들이 기업가치 훼손 또는 주주권익 침해와 관련된 이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고려아연 지분 5.20%를 보유한 주요 주주로,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의 표 대결에서 캐스팅보트로 꼽혀왔다. 박빙 구도 속에서 국민연금 지분이 현 경영진 안건에 실리지 않게 되면서, 안건 통과 가능성도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단은 최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기조와도 궤를 같이한다. 앞서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의 자사주 활용 안건에 대해 “주주 가치 제고 원칙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고려아연 안건 역시 경영진 및 이사회 결정이 일반 주주 이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회장을 포함한 고려아연 이사 6명은 오는 19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모두 이사회 구성 재편을 위한 이사 선임안을 주주총회에 상정한 바 있다.
최 회장 측은 총 5명의 이사 선임을 제안하며, 후보로 최 회장과 황덕남 이사회 의장을 포함시켰다. 반면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6명의 이사 선임 안건을 내고, 이 가운데 5명의 후보를 추천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합작법인(JV) 설립을 통해 지분을 확보한 크루서블JV는 월터 필드 맥라렌(Walter Field McLallen) 후보를 별도로 제안했다.
국민연금은 집중투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사 선임 안건에서는 일부 주주제안 후보에 대해 의결권을 분산해 행사하기로 했다. 크루서블JV가 제안한 월터 필드 맥래런(Walter Field McLallen) 후보와 와이피씨·영풍·한국기업투자홀딩스 측이 추천한 최연석·최병일·이선숙 후보군에 대해 보유 지분을 절반씩 나눠 행사할 예정이다.
재무제표 승인과 정관 변경 등 대부분 안건에는 찬성 입장을 나타냈다. 소수주주 보호 조항의 명문화, 전자주주총회 도입, 이사의 충실의무 강화 등 지배구조 개선 성격의 안건에는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 국민연금의 결정으로 고려아연 주주총회는 한층 치열한 표 대결이 예상된다. 최 회장은 지난 2014년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고려아연 사내이사로 선임된 이후 현재까지 직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주총에서 재선임에 실패할 경우 약 12년 만에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