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주식과 채권을 동시에 편입하는 채권혼합 상장지수펀드(ETF)가 연금 투자자들의 집중 포화 속에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퇴직연금 계좌 내 위험자산 투자 한도 규제를 준수하면서도, 실질적인 주식 투자 비중을 극대화할 수 있는 영리한 구조가 자산가와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세를 강하게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IBK자산운용은 최근 ‘IBK ITF 미국AI TOP10국채혼합50’ ETF의 상품 코드 등록을 마치고 한국거래소의 최종 상장 심사 단계를 밟고 있다.

그래픽=정서희

최근 자산운용사들은 채권혼합 ETF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달 26일 KB자산운용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국채를 결합한 ‘RISE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을 상장했고, 삼성자산운용도 ‘KODEX 삼성전자SK하이닉스채권혼합50’을 이르면 오는 4월 초에 출시할 예정이다.

채권혼합형 ETF는 삼성전자나 테슬라 등 주식과 채권을 함께 편입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자산배분형 상품이다.

현행 규정상 퇴직연금 계좌는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을 최대 70%로 제한하며, 나머지 30%는 반드시 채권 등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한다. 하지만 채권혼합 ETF를 지렛대 삼으면 전체 포트폴리오 내 실질적인 주식 비중을 최대 85%까지 늘릴 수 있다.

예컨대 투자자가 위험자산 한도 70%를 모두 채운 뒤, 남은 안전자산 30%를 채권혼합 ETF로 채우면 해당 ETF 내 편입된 주식 비중만큼 위험자산 노출도가 추가로 발생한다. 현재 단일 종목형 채권혼합 ETF는 주식을 최대 30%까지, 지수형은 최대 50%까지 담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 구조를 활용하면 전체 포트폴리오 기준 주식 비중은 단일 종목형의 경우 약 79%(70% + 안전자산 내 주식 9%), 지수형은 약 85%(70% + 안전자산 내 주식 15%)까지 확대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올해 증시 상승과 맞물려 공격적으로 주식 비중을 늘리려는 투자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관련 상품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채권혼합형 ETF 순자산총액(AUM)은 2024년 말 2조5604억원에서 2025년 말 8조889억원으로 1년 만에 6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19일 기준으로는 11조9745억원으로, 약 3개월 만에 지난해 상승분의 절반을 넘겼다.

순자산 1위 상품인 ‘KODEX 200미국채혼합’ ETF는 같은 기간 순자산총액이 약 6260억원에서 137% 증가한 1조4875억원을 기록했다. 2위인 ‘KODEX 삼성전자채권혼합 ETF’도 지난 11일 ‘1조 클럽’에 입성했다. 이 상품은 지난 1년간 개인투자자가 220억원어치를 순매수했는데, 이 중 149억원(67.8%)어치가 올해 순매수액이다.

퇴직연금 시장이 커지면서 향후 채권혼합 ETF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잠정 적립금은 501조원으로, 전년 대비 약 70조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실적 배당형 상품 비중도 17.4%에서 24.8%로 확대됐다.

하재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연평균 15% 증가하고 있고 2030년에는 1000조원에 달할 것”이라며 “실적배당형 상품 중 주식 비중은 10%에 불과한데 이 비중이 50%가 넘는 미국, 호주 등을 고려하면 퇴직연금 계좌 내 ETF를 통한 주식 매수 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투자 기조가 장기 투자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퇴직연금 관련 규제를 벗어나는 면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은 노후에 안정적인 소득을 마련하는 게 주된 목적이라 그런 취지로 안전자산 비중을 설정한 것”이라며 “이를 회피하는 목적으로 채권 혼합형 ETF가 쓰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