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의 모습. /뉴스1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해외 계열사를 활용한 순환출자 구조가 등장하면서 현행 공정거래법 규제의 사각지대가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법인을 경유한 순환출자는 현행법상 직접적인 규제 대상이 아니어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한국공정거래학회는 17일 ‘공정거래법상 순환출자 규제의 검토’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임영재 학회장은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한국 자본시장과 공정거래 법제 역사상 전례 없는 법적 복잡성을 드러내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외법인을 경유한 순환출자를 탈법 행위로 인정할 경우 향후 대기업집단 규제의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양측의 순환출자 고리를 둘러싼 분쟁은 작년 1월 고려아연 임시주주총회를 하루 앞두고 벌어졌다. 당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영풍정밀(현 KZ정밀)과 최씨 일가가 보유한 영풍 주식 10.33%를 해외법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 넘겨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이라는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했다. SMC가 영풍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게 되면서 상법 제369조 제3항에 따라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의 의결권이 제한되는 상호주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에 영풍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 연합은 의결권을 회복하기 위해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전량을 신설 유한회사 와이피씨(YPC)에 현물출자했다. 상호주 관계의 연결 고리를 끊어 의결권 제한을 피하려는 조치였다.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유한회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고려아연도 다시 대응에 나섰다. SMC가 보유한 영풍 주식을 모회사인 선메탈홀딩스(SMH)로 현물배당 방식으로 이전하면서 지분 보유 주체를 변경했다. 이로써 ‘영풍-YPC-고려아연-SMH-영풍’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됐다.

이후 영풍이 정기주주총회에서 1주당 0.04주의 주식배당을 결의하면서 SMH의 영풍 지분율은 10% 아래로 낮아졌다. 그러나 고려아연 측은 KZ정밀이 보유하던 영풍 주식 1350주를 추가로 취득해 지분율을 10.03%로 다시 끌어올렸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순환출자를 금지하면서도 규제 대상을 ‘국내 계열회사에 대한 계열출자’로 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외 계열사를 경유한 출자 구조는 규제 적용 여부가 불명확해질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사례에서도 호주 법인인 SMH와 SMC가 중간에 포함되면서 법 적용의 공백 문제가 드러났다.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법 규정의 취지를 우회하는 ‘탈법 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형식적으로는 해외 법인의 투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의사결정에 따른 것이라면 규제 회피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근본적으로는 법 제도의 한계가 드러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기업집단의 해외 투자 구조가 복잡해진 상황에서 국내 법인 간 출자만을 전제로 한 기존 규제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선 방안으로는 순환출자 규정에서 ‘국내 계열회사’라는 한정 문구를 삭제해 해외 계열사까지 규제 범위에 포함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이 경우 정상적인 해외 사업 구조까지 규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해외 계열사가 국내 회사 주식을 보유해 순환출자 고리의 연결점이 되는 경우에만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도 제시됐다. 또 국내 기업이 지배하는 해외 법인이 국내 계열사 주식을 취득할 경우 이를 국내 회사의 직접 보유로 간주하는 ‘실질적 지배 기준’ 도입도 보완책으로 거론됐다.

공정거래법 시행령의 탈법행위 규정에 해외 법인을 이용한 상호출자·순환출자 우회 유형을 명시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임 학회장은 “현행 시행령은 국내 법인 간 거래를 전제로 하고 있어 해외 법인을 경유한 새로운 우회 유형에 대한 직접적 규율이 미비하다”며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규제 사각지대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