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 기사는 2026년 3월 10일 09시 18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지난달 25일자로 취임 1주년을 맞은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장은 국내 벤처 생태계의 최대 약점으로 ‘회수 시장의 왜곡’을 꼽았다. 벤처 투자는 정책 자금과 민간 자금의 호응 속에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벤처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해야 할 무대인 코스닥시장은 여전히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퀀텀벤처스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김 회장은 “거래 주체의 95%가 개인인 시장에서는 기업의 펀더멘털을 보고 길게 투자할 주체가 사실상 없다”며 “기관 투자자 비율을 최소 10%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상장 후 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생각하는 해법은 30조원 규모의 코스닥 전용 펀드다. 이제는 시장에 분명한 신호를 줄 수 있는 큰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취임 후 1년이 지났는데, 소회가 어떤지.

“경선을 거쳐 회장에 선출된 만큼 회원사들의 선택과 지지가 있었고, 그만큼 힘을 받아 일할 수 있었다. 지난 1년은 외부 변수가 많았지만 아젠다를 하나씩 현실화하는 데 집중했다. 회원사 선후배와 동기들의 도움 속에서 협회의 문제의식이 내부적으로도 공유됐고, 성과도 쌓였다.”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과제는.

“벤처 투자 자체는 정부 정책과 민간의 호응 속에 커지고 있지만, 코스닥시장은 아직 구조적으로 손봐야 할 부분이 많다. 상장 이후에도 기업을 긴 호흡으로 지지하고 추가 자금을 공급해 줄 기관이 충분히 있어야 기업이 한 번 더 도약할 수 있는데, 현재 코스닥시장에는 그런 역할을 해줄 투자층이 지나치게 얇다. 상장 후에도 기관이 자금을 대주고 주주로서 역할을 해줘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코스닥시장의 가장 큰 한계는 무엇인지.

“거래의 대부분을 개인이 차지하는 구조다. 장기적 펀더멘털을 보고 투자할 수 있는 기관 자금의 비중이 너무 낮다. 최소한 시장의 10% 정도는 기관이 차지해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상장사가 유상증자나 후속 투자 등을 통해 다시 성장할 수 있다. 단순히 주가를 떠받치는 문제가 아니라, ‘상장 후 성장 자금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 하는 문제다.”

―30조원 규모의 코스닥 전용 펀드가 필요하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해 왔다.

“기존 코스닥 벤처펀드는 규모가 300억원 수준에 그쳐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300억원 정도로는 시장에 의미 있는 영향을 줄 수 없다. 벤처 생태계에서 비상장 단계는 벤처펀드가 정책적으로 육성해 왔듯, 상장 이후의 단계에서도 제도적으로 받쳐줄 기관 자금이 필요하다. 특히 기업의 유상증자 위주로 투자하는 대형 펀드가 조성되면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기관이 주주로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과 개인 투자자 모두에게 강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아야 벤처 생태계가 궁극적으로 민간 중심의 선순환 체계를 갖출 수 있다.”

―실행 방안은 구체화됐는지.

“코스닥 활성화의 필요성 자체에는 금융당국과 시장 참여자들이 폭넓게 공감하고 있다. 다만 해법에 있어서는 입장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협회가 제시하는 방안은 국민성장펀드의 일부 자금을 활용하고 자산운용사나 증권사가 운용을 맡아 민간 자금을 50% 이상 매칭하는 구조다. 꼭 입법이 선행돼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기존 코스닥 벤처펀드의 틀을 확장해 적용할 수 있으며, 우선은 현행 제도 안에서 배정과 설계만 잘하면 충분히 시도할 수 있다”

―유동성이 확대될 때 벤처기업의 몸값에 거품이 낄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과거 여러 차례의 거품 형성과 붕괴를 거치며 업계 전반의 밸류에이션 판단이 예전보다 훨씬 객관화됐다. 돈이 늘어나면 일부 산업에서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벤처투자 전반의 거품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개별 기업에 유입된 자금이 상장과 회수, 이후의 2차 성장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돈이 많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돈이 회수되는 구조가 건강한지가 더 중요하다.”

―소외된 섹터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봐야 하나.

“특정 시기 자금이 바이오, 반도체, 로봇 같은 유망 섹터로 쏠리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예컨대 플랫폼처럼 한때 각광받던 분야는 이제 ‘옥석 가리기’가 진행되는 단계다. 새로운 섹터가 등장하면 돈이 몰리고 플레이어가 늘어나며 일종의 거품이 생기고, 이후 경쟁과 구조조정을 거쳐 승자가 나오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시장 논리다. 또 국내에서 투자할 수 있는 산업 섹터 자체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게 현실이다. 과거에는 전국을 돌며 제조업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산업 지형이 바뀌면서 미래 산업 쪽으로 자원이 몰릴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벤처투자 시장은 과거 어느 시기와 닮았는지.

“닮은 시기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산업 전반을 이끌고 벤처기업은 협력업체가 되거나 인터넷·모바일 등 로컬 서비스 영역에서 기회를 잡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벤처기업이 미국·중국 기업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더 이상 참고할 만한 롤모델이나 정답이 있는 시장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국 벤처기업이 이제는 ‘패스트 팔로워’가 아니라 스스로 스토리와 역사를 만들어 가는 ‘퍼스트 무버’의 위치에 놓여있다.”

―그렇다면 벤처와 VC에 기회가 더 늘었다고도 볼 수 있나.

“그렇게 볼 수 있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잘하는 영역이 있고, 벤처기업은 더 빠르게 움직이며 새로운 기회를 찾아낼 수 있다. VC는 그 뒤에서 장기 자금을 공급하고 성장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결국 국가 성장도 대기업과 벤처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구조로 가야 한다.”

―VC가 너무 많아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VC의 진입과 퇴출이 시장 논리에 따라 자유롭게 이뤄지는 것이 건전하다. 다만 VC 업종은 일반 산업과 다른 구조적 제약이 있다. 한두 개 펀드를 결성하면 보통 8년가량 운용해야 하는데, 그사이 후속 펀드를 만들지 못하면 인력 유지가 어려워져도 당장 시장에서 퇴출되기 어렵다.”

―협회 차원의 해법도 있는지.

“나가고 싶은 운용사(GP)가 펀드를 다른 곳에 이관하고 퇴장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이미 협회 측에서 준비해 뒀다. 경우에 따라 컨티뉴에이션 펀드와 비슷한 방식이 될 수도 있고, 다른 GP로의 이관 구조가 될 수도 있다. 운용 중인 펀드는 책임 있게 관리되도록 하면서, 더 이상 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운용사는 일정 금액을 받고 시장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만 최근 VC 업황에 대한 기대가 다시 살아나면서 실제로 프로그램을 가동할 필요성은 다소 낮아졌다.”

―협회 운영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고.

“협회 내부에 4개 분과를 신설해 회원사 참여 폭을 넓혔다. 제도 개선, 코스닥 활성화, 글로벌, 생태계 건전화 등 분과별로 서로 다른 임무를 부여했고, 여기서 나온 의견을 매달 취합해 협회의 공식 목소리와 정책 제안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런 협회 내부의 활력이 최근 코스닥 활성화 논의 확산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