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3월 5일 17시 01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풍산이 방산 부문을 매각한다는 설이 제기됐다. 최근 방산업이 주목받으면서 기업가치가 급등한 상태지만, 방산 부문이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매각설이 왜 나왔는지에 대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방산 관련 업계에서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풍산의 매각설이 돌았다고 한다. 미국 국적인 류진 회장의 아들이 현행 법령상 방산 사업을 영위하는 데 제약이 있고 승계 의지도 크지 않아 류 회장이 오래전부터 방산 부문 매각을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풍산의 방산 부문 매각설을 미국 구리 생산 법인의 실적 부진과 연결해 해석하기도 한다. 국내 방산 사업은 승계가 쉽지 않은 만큼, 차라리 지금 몸값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팔고 그 매각대금으로 미 법인을 지원하는 선택을 내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 美 거주 류 회장 아들, 한국 정착 의지 약해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풍산그룹은 방산 부문을 매각하기 위해 복수의 기업과 물밑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가는 약 1조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며, 잠재 인수 후보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 등이 거론된다.
현재 유가증권시장에서 풍산의 시가총액은 3조3000억원 수준이다. 지분 38%를 보유한 풍산홀딩스가 최대주주다. 풍산홀딩스의 최대주주는 류진 회장(37.61%)이며 배우자와 자녀 등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더하면 총 48.76%가 된다. 즉 ‘류 회장→풍산홀딩스→풍산’으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방산 부문은 풍산 전체 실적을 견인하는 핵심 사업이다. 매출액은 구리 부문이 70%, 방산이 30%를 차지하고 있으나, 영업이익은 반대다. 방산이 75%, 구리가 약 25%를 담당하고 있다. 겉으로는 구리 회사처럼 보이지만 돈은 방산이 버는 셈이다.
풍산의 방산 부문 매각설이 나온 배경으로는 먼저 후계 구도 문제가 거론된다. 류 회장의 장남 로이스 류(한국명 류성곤)씨는 만 18세였던 2010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현행법상 외국인은 방산 사업을 경영하거나 물려받기 쉽지 않다.
외국인투자촉진법 제6조에 따르면 외국인이 기존 방산업체의 주식을 취득해 임원이 돼서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산업통상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산업부 장관이 방위사업청장과 협의해야 한다. 또 방위사업법 제35조는 방산업체 경영권의 실질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경우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외에도 방산업체의 대표이사나 주요 경영진이 되려면 국군방첩사령부(옛 기무사) 등으로부터 신원조사를 받고 비밀취급인가를 받아야 하는데, 외국인에게는 원칙적으로 비밀취급인가가 나오지 않는다.
류씨 또한 방산업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류씨는 현재 미국 구리 부문 계열사 PMX인더스트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PMX인더스트리의 부실이 방산 사업 매각의 동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PMX인더스트리는 풍산이 미국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1989년 미 아이오와주에 설립한 법인이다.
PMX인더스트리는 연간 12만톤 규모의 구리·구리합금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한때 미국 내 3대 신동압연 업체로 주목받기도 했으나,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1000억원 넘는 순손실을 기록하며 자본잠식에 빠졌고,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순손실 상태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누적 적자는 3468억원에 달한다.
이에 풍산 본사는 PMX인더스트리가 외부에서 차입할 때 담보를 서주는 지급보증액을 2293억원까지 늘린 상태다. 사실상 본사의 지원 없이 법인 유지가 어려운 셈이다. 방산 매각 대금이 PMX인더스트리의 경쟁력 키우기에 활용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배경이다.
◇ 한화 인수시 독점 리스크, LIG는 인수할 이유 별로 없어
다만 매각이 본격 궤도에 올라 성사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붙는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수 주체가 극히 제한된다는 점이다. 풍산은 5.56mm 소구경탄부터 155mm 곡사포탄까지 한국군이 사용하는 주요 탄약을 일관생산체제(제품의 개발 및 설계부터 제조·검품·출하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체제)로 공급하는 사실상 유일한 회사다. 외국 자본뿐 아니라 사모펀드의 인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두산모트롤이 사모펀드에 팔린 전례가 있지만, 이는 당시 두산그룹이 재무 위기에 처해 있었다는 특수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국내 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 정도 규모의 딜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한화그룹, 현대차그룹(현대로템), LIG그룹 등 몇 개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방산업체의 경영권을 인수하려면 산업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기존에 방산업을 영위하지 않던 기업이 새롭게 업에 진출하는 건 어렵다.
그런데 한화는 탄약 시장에서 이미 풍산과 직접 경쟁하고 있어 풍산의 방산사업 인수를 추진할 시 독점 논란 때문에 정부가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LIG넥스원의 경우 이미 2010년 풍산과 합작사 ‘LIG풍산프로테크’를 만들어서 운영 중이기 때문에 굳이 풍산의 방산사업을 인수할 유인이 적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 기업 매각은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승인이 필수적이어서 사실상 정부가 인수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구조”라며 “류 회장이 원하는 조건에 회사를 사겠다는 원매자가 나와도, 정부의 승인 여부가 딜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