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국내 상장사들의 경영권 분쟁 공시가 전년 대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날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기업과 행동주의 펀드 간의 경영권 공방이 한층 격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러스트=챗GPT 달리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날까지 코스피·코스닥·코넥스 상장 기업이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올린 ‘소송 등의 제기·신청’(기업 중복 포함) 공시는 70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한 수치다. 2024년 전체 공시는 313건, 2025년은 340건으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영권 소송 급증의 기폭제로 지난해 시행된 ‘1·2차 상법 개정안’을 지목한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한 1차 개정과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2차 개정이 맞물리면서, 소수 주주가 경영권에 전방위로 도전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마련됐다는 분석이다.

천재민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확대나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 주주 측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이른바 ‘3% 룰’이 시행되면서 소수 주주 쪽에서 경영권에 도전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정책 시행 속도가 빨랐던 점도 분쟁 증가 요인으로 거론된다. 조동근 명지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정책 변화 이후 시장이 적응할 시간을 갖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번 개정안은 속도가 빨랐다”며 “이 부분이 경영권 분쟁 소송 공시가 증가한 데 영향을 주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전날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까지 더해지면서 기업의 경영권 방어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요긴하게 활용됐던 자사주 배정이나 우호 지분 교환 등이 원천 차단되면서, 상장사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해외 주요국처럼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등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 ‘흔들기’는 증가할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실제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은 공개 서한과 주주 제안을 통해 기업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지난 13일 코웨이에 공개 주주 서한을 보내 자본 구조 재정비와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요구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은 태광산업과 KCC에 주주 서한을 보내 자사주 매입·소각을 요구했다.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은 LG화학에 LG에너지솔루션 지분 10%가량을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 기업은 자사주 소각 관련 공시를 잇달아 올리고 있다. 1월 1일부터 이날까지 ‘주식 소각 결정’ 공시는 112건 올라왔다. 전년 동기 대비 2배 증가한 수치다. 전날 코스피 상장사 키움증권은 보통주 69만5345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고 넥센도 보통주 100만주 소각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