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주가지수가 40% 이상 급등하며 코스피가 6000선을 돌파하는 등 증시가 뜨겁게 달궈졌지만, 기업들의 증시 진입 관문인 기업공개(IPO) 시장은 오히려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부실 기업 퇴출을 확대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방침에 맞춰 한국거래소가 심사 문턱을 높이면서 신규 상장에 나서는 기업이 눈에 띄게 줄었다. 금융감독원의 증권 신고서 심사 강화로 기업들의 상장 일정이 줄줄이 지연된 영향도 크다. 전례 없는 강세장 속에 시중 자금이 증시로 몰리고 있지만, 올해 상장 기업 수는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강세장 속 ‘IPO 가뭄’
25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2일부터 2월 말 현재까지 일반 투자자 대상 공모 청약을 진행한 기업은 덕양에너젠, 케이뱅크, 에스팀, 액스비스 등 4곳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17개 기업(SPAC 제외)이 일반 청약을 진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76% 감소한 수치다. 특히 지난달에는 일반 공모 청약 기업이 수소 전문업체 덕양에너젠 한 곳뿐이었다. 이달 들어서도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 모델 에이전시 기업 에스팀, 광학 장비 전문기업 액스비스 등 3곳에 그쳤다.
기업의 증시 상장 1차 관문인 상장예비심사(상장예심)를 신청하는 기업도 줄었다. 1~2월 거래소에 상장예심을 청구한 기업은 6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곳)과 비교해 약 40% 감소했다. 상장예심은 기업이 사업성, 재무 안정성, 공시 체계 등을 한국거래소로부터 점검받아 ‘상장 자격’을 부여받는 절차다. 이를 통과하지 못하면 IPO에 나설 수 없다. 예심 청구 자체가 줄면서 올해 상장 기업 수가 급감할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금감원·거래소 동시 압박… 상장 문턱 높아져
투자 업계에서는 부실 기업 퇴출을 강화해 증시 활황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기조가 역설적으로 IPO 시장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은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해 시가총액이 낮은 이른바 ‘동전주’ 종목을 정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맞춰 거래소가 각종 심사 기준을 보수적으로 적용하면서 IPO 문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거래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상장 후 시가총액이 1000억원에 못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상장을 사실상 제한해 왔다. 7월부터 코스닥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이 200억원 미만으로 강화되는 데 따른 조치다.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심사 강화 기조는 상장 일정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항암 신약 개발 바이오텍 카나프테라퓨틱스는 지난달 초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월말 공모 청약을 계획했지만, 금감원의 잇단 정정 요구로 일정을 미뤘다.
금감원은 ‘공모가 뻥튀기’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최근 실적 전망의 근거를 증권신고서에 보다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액스비스 역시 당초 이달 초까지 기관 수요예측과 일반 청약을 마칠 계획이었지만, 금감원 요구에 따라 두 차례 정정 절차를 거치면서 일정이 지연됐다.
◇공급 막히자 자금 쏠림… 공모주는 흥행
대기업 상장사의 계열사 중복 상장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이후, 중복 상장에 대한 심사도 한층 엄격해졌다는 평가다. 중복 상장 논란이 제기된 기업은 상장 심사가 지연되거나 철회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산네트웍스 자회사 디티에스는 지난해 9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했지만, 5개월째 결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LS그룹도 지난 1월 26일 지주회사 LS의 증손회사 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 신청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높아진 문턱을 통과한 기업은 흥행에 성공하는 모습이다. 증시 활황으로 급증한 공모주 투자 수요가 소수 기업에 집중되는 분위기다. 올해 첫 IPO 주자였던 덕양에너젠의 일반 공모 청약 경쟁률은 1354대 1을 넘었다. 케이뱅크 역시 일반 청약에서 10조원에 가까운 증거금을 모았다. 한 증권사 임원은 “공모주 투자 수요는 여전히 많지만, 정작 투자할 기업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