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부실기업 퇴출 속도를 높이기 위해 상장폐지 요건을 대폭 강화한다. 시장에서는 코스닥 체질 개선에 대한 기대와 퇴출 가속화에 따른 우려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시가총액 및 주가 기준을 중심으로 한 상장폐지 요건 강화 방안을 내놓으며 코스닥 시장의 ‘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12일 관련 브리핑에서 “부실기업 정리는 진작 해야 했다”며 “투자자에게 신뢰받는 시장으로 대도약 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고 더 엄정한 부실기업 퇴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부실기업의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코스닥 신뢰 회복의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가격 지표를 앞세운 기계적 퇴출이 시장의 또 다른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상장폐지 기준 설정의 적정성과 적용 속도를 둘러싸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주가·시총 기준이 오히려 가격 왜곡 유도” 우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시가총액 기준 상향 조기화와 주당 1000원 미만인 이른바 ‘동전주’ 상장폐지 요건 신설이다. 당초 2027년과 2028년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이 150억원에서 200억원, 200억원에서 300억원씩 상향 조정될 예정이었지만, 각각 올해 6월, 내년 1월까지로 반년씩 당겨졌다.

오는 7월부터는 30거래일 연속 주가가 1000원 미만인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1000원을 넘기지 못하면 곧바로 상장폐지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안의 최대 쟁점으로 변동성이 큰 ‘가격 지표’를 지목한다. 실적이나 자본 잠식 등 객관적 수치와 달리, 주가와 시가총액은 수급과 심리에 따라 단기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45거래일 연속이라는 유예 기간이 있지만, 유상증자나 테마 편승을 통한 일시적 반등으로 규제를 피하는 ‘꼼수’가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업들이 본업의 경쟁력 강화보다 단기적인 주가 방어에만 매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상장 유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행위가 반복될 경우, 오히려 시장의 왜곡과 투자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본시장 연구원은 “부실기업 퇴출에 대해선 시장 전반이 공감하는 문제이지만, 움직이는 주관적인 지표를 기준으로 삼아버리면 어느 순간 주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 기업에 닥친다”며 “다른 말로 시장 가격 왜곡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걸 정부가 주도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정서희

◇ “산업 사이클·시장 쏠림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 적용” 지적도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특성상, 국내 상장사 대부분은 반도체·방산·로봇·이차전지 등 경기 및 산업 사이클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시클리컬(경기민감주)’ 성격이 짙다. 코스닥 종목 중 상당수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대기업 벤더사이기도 하다.

문제는 수년에 걸친 경기 하강 국면에서 특정 산업군이 침체될 경우, 관련 중소업체들이 한꺼번에 ‘퇴출 사선’에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증권사 리포트 등 정보 접근성이 떨어져 기관 수급에서 소외된 중소형사일수록, 실적과 무관한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증시에서 우후죽순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국IR협의회 기업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증권사가 발간한 보고서 중 코스닥 기업 보고서 비중은 23.2%로 집계됐다. 특히 시가총액 1000억원 미만인 소형주 보고서는 1.6%에 불과하다. ‘쏠림 장세’가 심화한 상황에서 소외 기업이 연쇄적으로 시장 밖으로 밀려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시장 특성 및 산업 사이클 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기업에 단순히 시가총액, ‘동전주’ 주가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 코스닥 상장사 관계자는 “주가가 1000원 내외였지만 반도체 등 올해 업황이 좋은 종목은 (상장폐지 시가총액) 기준을 무난히 넘기겠지만, 사이클이 꺾이면 동일 기업도 퇴출 위험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화그룹주주연대와 주주연대범연합 개인투자자들이 지난해 2월 10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상장폐지 간소화 정책 개선 및 상법개정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 ‘주가 띄우기’ 기업 부담 확대… 투자자 보호책 필요

상장폐지 대상 기업 수가 기존 예상치였던 50개보다 3배 이상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단기 시장 충격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국거래소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이번 개혁안 적용 시 올해 코스닥 퇴출 위기에 몰리는 기업은 최소 100개에서 최대 220여 개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퇴출 종목이 급증할수록 정리매매 과정에서의 ‘폭탄 돌리기’와 개인 투자자의 자산 증발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부실기업 정리라는 큰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속도와 범위가 확대될 경우 개인 투자자 피해가 동시에 커질 수 있다”며 “퇴출 정책과 함께 투자자 보호 장치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측에서도 부담이 적지 않다. 이충헌 독립리서치 밸류파인더 대표는 “(상장폐지 기준에 속하는) 중소형사들이 반기 단위로 상향되는 시가총액 기준을 맞추기 위해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IR이나 주가 관리에 나서야 하는 등 인위적인 노력을 해야 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