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자본시장이 제도적 도약기를 맞았다. 1억 인구의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프런티어’에서 ‘신흥’ 시장으로의 등급 상향이 가시화되면서 글로벌 자금의 유입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1만여 한국 기업이 다져놓은 실물 경제의 기반 위에, 이제는 국내 금융사들이 현지 금융 인프라를 선점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재면 주베트남 대사관 재경관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금융사들이 현지에 안착해 자산 팽창의 수혜를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 체계를 촘촘히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이재면 재경관이 지난달 12일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강정아 기자

이 재경관은 기획재정부 세제실과 법인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등을 거친 정통 경제 관료로, 2024년 8월부터 현지에서 양국 경제 교류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베트남은 삼성전자 한 곳이 전체 수출의 약 20%를 책임질 만큼 우리 기업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라며 “실물 경제에서의 압도적 영향력을 금융 산업의 경쟁력으로 전이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분석했다.

현재 베트남에는 국내 증권사 6곳과 자산운용사 8곳이 현지법인 또는 사무소 형태로 진출해 있다. 이 재경관은 베트남 시장의 강점으로 ▲높은 경제 성장률 ▲역동적인 젊은 인구 구조 ▲탄탄한 한국 FDI(외국인직접투자) 기반 ▲문화적 유사성을 꼽았다.

다만 현지 시장의 벽은 낮지 않다. 현재 한국계 증권사들은 자본 규모나 점유율 면에서 현지 상업은행 계열 로컬 증권사들에 밀려 점유율이 높지 않은 상태다. 특히 베트남 증권업 수익 구조가 주식담보대출 이자와 수수료에 편중되어 있어, 자본력이 곧 영업력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로컬 증권사들이 공격적인 증자로 격차를 벌리는 상황에서, 한국 금융사들은 단순 중개 업무를 넘어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WM) 등 고부가가치 영역에서 차별화된 전략을 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한국 증권·운용사들은 ‘질적 경쟁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이 재경관은 “디지털 시스템, 리스크 관리 능력 등에서 한국 금융사의 역량은 매우 우수하다”며 “은행 중심의 자금 조달 구조를 가진 베트남 시장은 앞으로 주식·채권 비중 확대와 금융 상품 고도화하고 있어 한국 현지 법인들에게는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대사관 경제팀, 금융감독원 하노이 사무소, 현지 금융기관 협의회가 함께 ‘원팀 코리아’ 체계를 구축해 진출 금융사들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금융감독원 베트남 하노이 사무소. /강정아 기자

이 재경관은 “긴밀한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해 현지 진출 금융사들의 건의 사항을 당국에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다”며 “고위급 회담과 상호 인적 교류는 물론 한국형 금융 시스템의 수출 등 활발하게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실질적인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베트남 증권거래소는 한국거래소(KRX) 시스템을 전격 도입하며 인프라 현대화에 나섰고, 같은 해 8월에는 금융감독원과 베트남 증권위원회(SSC)가 감독 강화 및 제도 개선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SSC는 외국계 증권사를 주요 외국인직접투자(FDI) 기업과 함께하는 시장을 키워갈 핵심 파트너로 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재경관은 “한국 금융사는 단순한 외국계 기관이 아니라, 베트남 금융시장 선진화의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다”며 “특히 엄격한 내부통제와 국제 기준 회계처리 능력을 갖춰 현지 당국으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계 금융사는 엄격한 준법 기준을 고수해야 하는 만큼, 현지 기업보다 제도적 해석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언급했다. 그는 “베트남은 은행·증권·보험 감독이 각각 분산돼 있다 보니, 한국의 통합 감독 체계에 익숙한 금융사 입장에선 초기 적응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향후 베트남 금융시장은 구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베트남 정부는 올해 9월 예정된 FTSE 러셀 신흥시장(EM) 편입을 신호탄으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지수 편입 및 국제 신용평가사의 투자적격등급(BBB-) 취득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재경관은 “이러한 성과가 가시화된다면, 시장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패시브 자금이 베트남에 유입되고 채권시장도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선진 금융 노하우와 고도화된 시스템을 보유한 한국계 증권·운용사들은 리테일 및 기업금융(IB) 상품의 혁신을 통해 현지 기업과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람’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기업들이 자체 전문가를 육성하고, 현지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