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경제 중심지 호찌민은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법인과 지점을 운영하며 ‘K-증권’의 전초기지로 자리 잡았다. 2007년 미래에셋증권이 한국 증권사 최초로 진출한 이후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KB증권 등이 호찌민과 하노이에 현지 법인을 세우며 세를 확장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베트남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포화 상태에 이른 국내 리테일 시장을 넘어, 인구 1억 명의 거대 내수 시장과 연 6~7%대 고성장을 구가하는 베트남의 ‘젊은 자본’을 선점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겠다는 포석이다.
자산운용사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2006년 국내 운용사 중 처음으로 베트남 사무소를 열었고, 2020년에는 현지 법인으로 전환했다. 이 외에도 KB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키움투자자산운용 등이 베트남 시장에 잇따라 발을 들였다.
증권사가 직접 투자의 판을 깔아준다면, 운용사들은 베트남의 가파른 자산 성장 속도에 맞춰 펀드와 ETF 등 간접 투자 상품을 보급해 현지 기관과 고액 자산가들의 자금을 흡수하겠다는 전략적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 현지인 CEO 앞세워 리테일 전략 펼치는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증권 베트남 법인은 외국계 종합 증권사 중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시장 점유율은 2.93%로, 전체 증권사 중 8위다. VP증권(VPS), 사이공증권(SSI) 등 시장의 약 60%를 장악한 현지 로컬 증권사 7곳을 제외하면 외국계 증권사 중 가장 독보적인 위치다.
미래에셋증권이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VIP 고객 유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 고도화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법인의 당기순이익은 약 426억원으로, 전년(363억원) 대비 17%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치열해진 증권업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에셋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증권사 최초로 현지인 법인장을 선임했다. 응우옌 호앙 옌(Nguyen Hoang Yen) 신임 법인장은 2006년 미래에셋자산운용 설립 초기 멤버로 합류해 약 20년간 그룹에 몸담아온 인물이다.
응우옌 법인장은 “현지 시장과 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리더가 조직을 이끄는 것이 장기 성공의 열쇠”라며 “현지인 최고경영자(CEO) 선임은 형식이 아닌 전략적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베트남 법인은 기존 신용공여 중심의 리테일 사업에서 더 나아가 우량 회사채를 쪼개 판매하는 리테일 증권으로 수익 다각화에 나선다. 특히 에너지, 상수도, 교육, 헬스케어, 대형 외국인 직접투자(FDI) 기업 등 지속 가능한 인프라 산업 중심의 우량 채권 발굴에 집중할 계획이다.
응우옌 법인장은 “미래에셋증권 베트남 법인은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그린본드 거래를 통해 선도적 입지를 확립했다”며 “특히 하노이 쑤언마이(Xuan Mai) 정수장을 위한 그린본드 발행은 베트남 최초로 20년 만기, 국제 신용등급 AA 및 국내 신용등급 AAA를 획득한 거래로, 글로벌 금융 전문지인 IJGlobal의 2024년 우수 프로젝트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했다.
중장기적인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투자은행(IB), 자본조달 자문, 인수합병(M&A), 채권 매매 등을 핵심 분야로 삼아 사업을 확정할 것”이라며 “리스크 관리, 기술·인력 개발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단일 수익원에 의존하지 않는 종합 금융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 코인·금까지 겨냥… ‘신(新) 자산 ETF’ 준비하는 한투운용
2006년 국내 최초로 베트남 투자 펀드를 선보인 한국투자신탁운용은 2020년 현지 법인(KIM 펀드 베트남)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운용 사업에 나섰다. 그동안 현지에서는 금융주 투자 ETF와 배당 성장주 펀드 등을 잇달아 출시하며 입지를 다져왔다.
현동식 베트남 법인장은 국내 1호 베트남 펀드 매니저다. 그는 “베트남 리테일 펀드 시장은 과거 한국의 20년 전과 비슷한 단계”라며 “우리나라는 적립식 펀드 등이 나오면서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생겼고, 그 이후 펀드 시장이 커졌는데, 베트남은 그 직전 단계”라고 했다. 그는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직접 투자에서 ETF로 옮겨간 것처럼, 베트남 투자자들 역시 투자 경험이 쌓이면서 동일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 KIM 펀드 베트남 법인은 채권형, 기업공개(IPO) 공모주, 혼합형 펀드 출시를 준비 중이다. 현 법인장은 “과거 IPO 펀드는 정부가 보유 중인 국영기업을 외국인 중심의 투자자들에게 파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기업·대주주를 직접 만나 상장 예정 기업의 지분을 매수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며 “베트남 정부가 올해부터는 기업 상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심사 속도도 높이겠다고 밝혔기에 현지 경험을 바탕으로 미리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현 법인장은 가상자산 ETF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베트남은 지난해 상반기 아시아 가상자산 투자 규모 3위다. 인구 대비 투자 비율은 한국(20.5%)보다 높은 21.2%다. 그는 “베트남은 주식과 가상자산에 투자를 구분하는 인식이 크지 않다”며 ‘금가결합’(전통 금융과 가상자산 결합) 모델 속에서 다양한 ETF 상품이 나올 수 있다고 기대했다.
베트남 정부가 암호화폐 및 금 거래소 설립을 위한 시범 사업과 계획을 잇달아 발표한 점도 기회 요인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국내에서 순자산 4조원 규모의 ‘ACE KRX금현물 ETF’를 성공적으로 운용 중인 만큼, 현지에서도 금 ETF 출시 등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현 법인장은 “주식, 채권, 사모펀드 등 전통 자산 상품을 확대하는 동시에 베트남 ‘최초’의 타이틀을 거머쥘 혁신적인 금융 상품을 선보일 것”이라며 시장 성장에 맞춘 공격적인 행보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