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가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수수료가 미국 지수 ETF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지수 ETF 수수료를 앞다퉈 인하하던 대형 자산운용사의 경쟁이 국내 지수 ETF 시장에선 이뤄지지 않은 결과다. 최근 증시 급등의 핵심 동력이 ETF를 통해 유입된 가계 자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이 여전히 과도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내 증시 급등세에 가계 자금은 대거 증시로 유입됐다. 많은 개인 투자자가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ETF를 순매수했다.
4일 각 자산운용사에 따르면 업계 ‘빅(big) 2’인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삼성자산운용이 미국 나스닥 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를 추종하는 ETF 총보수는 각각 연 0.006%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출혈 경쟁을 우려할 정도로 운용사들이 수수료를 인하하고 나선 덕분이다.
하지만 국내 지수를 추종하는 ETF 수수료는 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코스피200 추종 ETF의 경우, 순자산 규모가 14조원이 넘는 삼성자산운용 ‘KODEX 200′의 총보수는 연 0.15%에 달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 ‘TIGER 200′의 수수료 역시 0.05%로 낮지 않지만, KODEX 200은 이보다 2배 더 비싸다.
코스닥150 지수를 추종하는 ETF 보수 부담은 더 크다. ‘KODEX 코스닥 150′의 총보수는 연 0.25%이며, ‘TIGER 코스닥 150′도 0.19%에 이른다. 개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국내 대표 지수 상품들이 운용사들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몇 년간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ETF 시장이 급성장하자 경쟁사보다 조금이라도 낮은 수수료를 책정해 투자자 유치 경쟁을 벌여왔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몰린 미국 지수 추종 ETF의 경우 수수료가 파격적으로 낮아졌다.
반면 국내 지수 ETF 시장에서는 이 같은 경쟁이 실종된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지수 상품들의 수수료 절대 수준은 여전히 높게 형성되어 있으며, 대형 운용사 간의 수수료 격차조차 좁혀지지 않고 크게 벌어져 있다.
정상적인 시장 경쟁이 이뤄지려면 수수료가 높은 쪽이 경쟁사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보수를 낮춰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삼성자산운용은 미래에셋자산운용보다 3배 수준의 수수료를 유지하고 있다. 1위 사업자가 가격 경쟁에 나서지 않으면서 국내 대표 지수 ETF 시장에서 수수료 인하 흐름이 막혀버린 셈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자산운용이 국내 지수 ETF의 수수료 인하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룹 사정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해당 상품들이 그룹 금융 계열사의 자금을 운용하는 안정적인 통로 역할을 하고 있어, 굳이 개인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제 살 깎기’식 수수료 인하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코스피200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ETF는 그동안 기관 자금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KODEX 200의 경우 삼성생명 변액보험을 통해 유입되는 자금을 관리하는 비중이 상당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 변액보험 계정이 보유하고 있는 KODEX 200 ETF 규모는 7000억~8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이 해당 ETF를 보유한 규모는 삼성생명이 변액보험을 통해 보유한 규모보다 작았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증시가 급등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개인이 보유한 KODEX 200 규모는 올해 1월 말에는 4조6000억원으로, 삼성생명 보유분의 6배를 넘어섰다.
ETF 보수는 연 단위로 보면 미미하지만, 장기 투자할 경우 복리 효과로 수익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 수준이 낮아지려면 대형사의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데, 국내 지수 ETF에선 잠잠한 모습”이라며 “ETF로 국내 증시에 투자하는 이들이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이들보다 높은 비용을 부담하는 아이러니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자산운용 측은 “총보수를 포함한 국내 지수 ETF의 수익률이 높은 수준이고 괴리율 등 ETF 관리도 안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