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들의 ‘밸류업’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공통된 변화가 있다. 주가 부양용 정책을 늘어놓는 대신, 기업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단 점이다.

단순히 배당금을 올리거나 자사주를 소각하는 ‘보여주기식 처방’에 급급한 한국 상장사들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기업들에 밸류업은 단순한 핵심성과지표 달성을 넘어, 자본 효율성을 경영 판단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의사결정 프로세스의 현대화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달 21일 만난 일본 금융청 관계자와,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아스카제약홀딩스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일본 기업 현장에서는 기업가치 제고가 ‘성과 지표’가 아니라 ‘경영 판단의 기준’을 다시 세우는 문제로 다뤄지고 있었다.

◇ MUFG, “왜 이 자산을 보유하는가”를 묻다

일러스트레이션에서 보이는 MUFG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밸류업 흐름은 대기업·금융권에서 먼저 시작됐다. 일본 최대 금융그룹 MUFG는 기업가치 제고의 핵심을 ‘자본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능력에서 찾고 있다. MUFG 경영진이 설정한 중장기 ‘자기자본이익률(ROE) 12%’는 달성 목표라기보다, 사업과 자산의 존치 여부를 가르는 의사결정 기준에 가깝다.

변화의 출발점은 질문이었다. “왜 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가”, “이 자산은 자본비용을 상회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서 출발했다.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자산은 즉각 정리 대상이 됐다. MUFG는 관행적으로 보유해 온 교차지분(정책보유주식)에도 위험가중자산이익률(RORA)이라는 수익성 기준을 적용, 자본비용을 밑돌 경우 거래 관계와 무관하게 매각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는 금융당국의 설계와 궤를 같이한다. 21일 만난 금융청 관계자는 “우리는 상장사들에게 교차지분(정책보유주식) 보유를 줄이라고 직접 요구하지는 않는다”며 “대신 이사회가 매년 각 지분에 대해 계속 보유할 필요가 있는지를 자본비용 관점에서 스스로 점검하도록 요구한다”고 말했다. 감축을 강제하기보다 판단의 근거를 이사회 안건으로 공식화해 스스로 변화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그래픽=손민균

MUFG는 올해까지 약 7000억엔 규모의 전략적 지분 매각 로드맵을 제시했다. 현재 전략적 지분 포트폴리오의 88%가 내부 수익성 기준을 상회하고 있으나, 기준에 미달하는 자산은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를 “저수익 자산을 정리해 고수익 사업으로 재배치하는 자본 리사이클링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자본 배분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사회와 인적자본 전략도 함께 손질됐다. MUFG 이사회는 사외이사 9명 전원이 독립이사로 구성돼 있으며, 금융·회계·법률·글로벌·디지털 분야 전문가와 여성 사외이사를 포함해 의사결정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강화했다. 여성 관리자 비율을 2030년 30%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도 명시했다. MUFG는 인적자본 강화를 ESG 차원에서 나아가 장기 ROE 제고를 위한 경영 인프라 투자로 규정하고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도 병행됐다. 미국 유니온뱅크 매각 이후 해외 사업을 전면 재점검하고, 아시아 파트너 은행을 중심으로 디지털과 비금융 영역까지 연결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대차대조표 확대에 의존하던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수수료 수익 비중을 높이고 비용 구조를 슬림화하는 내실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MUFG 관계자는 “ROE는 실적 목표가 아니라, 어떤 사업을 남기고 어떤 자산을 정리할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며 “숫자를 앞세우기보다, 그 숫자가 실제 의사결정에 작동하도록 경영 구조를 바꿨다”고 말했다.

◇ 아스카제약홀딩스, 경영진의 ‘귀’를 열다

중견기업 현장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아스카제약홀딩스가 2023년 11월 발표한 공시 자료는 사실상의 ‘반성문’이었다. 경영진은 “ROE는 3년 연속 8%를 넘겼지만 PBR은 2018년 이후 줄곧 1배 미만에 머물고 있다”며 그 원인을 세 가지(성장 전략 미전달, IR 부족, 불명확한 현금 배분)로 자가 진단했다.

변화의 핵심은 경영진의 ‘귀’를 연 것이었다. 아스카제약은 일상적인 IR 인터뷰 내용을 경영진과 공유하고, 분기마다 투자자 피드백을 경영진에 정식 보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실제 2019년 41회에 불과했던 IR 인터뷰는 2024년 117회로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아스카제약 관계자는 “이 과정을 통해 경영진의 인식이 ‘실적 설명’에서 ‘주가와 자본비용’으로 이동했다”며 “과거 투자자 질문 또한 실적이나 개발 중인 약물(파이프라인)에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해외 라이선스 인·아웃을 포함한 R&D 및 판매 전략, 중장기 관점의 해외 사업 전략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도쿄증권거래소(TSE)는 아스카제약의 ‘현금 배분의 투명성’을 우수 포인트로 꼽았다. 영업활동에서 나온 현금과 교차지분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이 성장 투자, 경영 기반 강화, 주주환원에 어떻게 배분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공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아스카제약은 교차주식을 순자산의 20% 미만으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를 매각한 현금 중 일부를 베트남과 필리핀 현지 제약사 지분 인수에 투입했다. 회사 측은 “잠자고 있던 자본을 성장 자본으로 전환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주주환원 정책도 전면 개편했다. 2023년 주당 배당금을 20엔에서 40엔으로 두 배 인상했고, 2024년부터는 배당성향 30% 원칙을 도입했다. 주가 흐름과 관계없이 연 30엔을 보장하는 최저 배당 기준도 설정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도 병행됐다. 저마진 제네릭(복제약)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산부인과 특화 신약으로 무게중심을 옮겼고, 이 과정에서 ROE 8% 목표를 1년 앞당겨 달성했다. 현재 아스카제약홀딩스의 PBR은 1배를 넘어선 상태다.

◇ “공시의 채널력 강화해야… 민관의 원팀 움직임이 주효”

일러스트=손민균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공시의 ‘압박 강도’와 ‘채널 인식’에서 찾았다. 그는 “일본은 기업지배구조 코드를 구체화해, 각 항목을 실제로 공시했는지 여부를 시장에 명확히 드러낸다”며 “공시에 가해지는 실질적인 압박이 한국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진단했다.

예컨대 일본의 MUFG가 저수익 지분을 매각해 고수익 사업에 재투자하는 ‘자본 리사이클링’ 과정을 투명하게 공시하는 반면, 한국의 많은 상장사는 막대한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도 구체적인 활용 계획이나 자본 비용에 대한 분석을 시장에 공유하지 않는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기업이 돈을 쌓아만 두고 ‘자본 효율성’을 방치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어 정책의 일관성도 강조했다. 그는 “거래소와 금융청, 정부, 연기금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도 중요하다”며 “대표 기업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공시에 나서면서, 동종 기업 간 ‘피어 효과(peer effect)’가 극대화됐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국은 핵심 사업부를 인적·물적 분할해 이중 상장하는 식의 의사결정이 빈번함에도, 이 과정에서 소액 주주의 권익 보호나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구체적인 공시가 미흡하다는 점이 일본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공시에 대한 인식 차이도 짚었다. 이 연구위원은 “공시는 본래 투자자와의 소통 채널인데, 한국의 공시는 여전히 사후 보고에 가까운 성격이 강하다”며 “공시를 통해 주주들의 모니터링을 받고, 그 과정에서 기업이 변화하도록 만드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