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EV) 전환 계획을 속속 철회하거나 지연시키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리튬, 니켈,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 원자재 가격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가파른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배터리 판매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단기적으로 실적 개선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14일 트레이딩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탄산리튬 가격은 지난 12일 전날 대비 7500위안(4.93%) 급등한 톤당 15만9500위안에 마감했다. 지난해 12월 1일 9만4000위안 선에서 출발한 탄산리튬 가격은 이날까지 약 69% 상승했다. 이는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니켈은 지난해 12월 톤당 1만4800달러 선에서 출발해 이날 1만7900달러까지 오르며 한 달 만에 약 20% 상승했다. 코발트 역시 지난해 12월 톤당 4만8500달러를 넘어선 이후 한 달여 만에 5만6000달러 선까지 오르며 약 15.5% 급등했다.
이 같은 원자재 가격 흐름은 최근 전기차 시장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부진한 수요와 생산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속도 조절을 넘어 전략 자체를 전면 수정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전기차 보조금을 전격 폐지하며 내연기관 중심으로 정책 기조를 선회했고, 유럽연합(EU) 역시 2035년으로 못 박았던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조치를 사실상 철회했다. 이에 따라 포드, 메르세데스-벤츠, 볼보 등은 2030년까지 순수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기존 계획을 일부 수정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올해 전기차 수요는 2350만대로 지난해보다 9.4%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며 “지난해 전기차 수요가 전년 대비 20.7%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 둔화는 불가피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수요는 줄었지만, 핵심 원자재인 리튬과 니켈, 코발트의 가격은 연일 상승세다. 에너지저장장치(ESS)향 수요가 늘어난 데다, 각국 정부 정책 변화로 공급이 급격하게 감축됐기 때문이다.
우선 리튬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로 ESS 투자가 선행되면서, 가격이 빠르게 뛰고 있다. 리튬은 전기차용 NCM 배터리뿐 아니라 ESS에 주로 쓰이는 LFP(리튬인산철)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다. 글로벌 전력 수요는 2030년 890테라와트시(TWh), 2040년 1800TWh, 2050년 3000TWh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 정책도 리튬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중국 재정부는 배터리 제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수출 환급률을 오는 4월부터 9%에서 6%로 인하하고, 2027년부터는 이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에 따라 기업들이 수출 물량을 앞당기면서 단기적으로 리튬 수요가 몰렸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광산 가동 중단과 증산 제한 정책까지 겹치며 공급 부담이 커졌다.
니켈과 코발트 역시 공급 제약이 가격 강세의 직접적인 배경이다. 니켈은 2023년 이후 인도네시아발 공급 급증으로 장기 하락세를 겪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가 올해 니켈 광산 생산량을 전년 대비 34% 감축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장 분위기가 반전됐다.
코발트도 주요 생산국의 수출 제한과 할당제 도입 영향으로 공급이 줄고 있다. 옥지회 삼성선물 연구원은 “2026년 코발트 수출 가능 물량은 생산량의 약 40%로 제한될 예정”이라며 “이에 따라 글로벌 코발트 시장은 공급 과잉 국면에서 공급 부족 국면으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원자재 강세가 침체된 국내 배터리 업계의 실적 개선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가격 연동 구조에 따라 배터리 판매 단가가 상승하고, 이는 매출 규모 확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2~3년간 리튬 등 광물 가격이 과도하게 떨어져서 현재는 회복하고 있는 구간”이라며 “핵심 광물 가격 강세가 유지되면 배터리 업체가 가격을 고객사에 전가해 매출이 늘기 때문에 국내 배터리 업계에는 긍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과거 CATL이 손익분기점으로 언급했던 20만위안을 넘으면 원가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판매량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선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정책 환경 변화에 따른 판가 상승은 2차전지 소재 밸류체인에 분명한 호재”라면서도 “미국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와 유럽 시장 내 중국 업체들의 공세 등 전방 수요 환경은 여전히 부담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향 비중이 낮거나 탈중국 공급망 이슈로 상대적으로 물량 방어가 가능한 업체 위주의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