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대장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일 사상 최고가를 갈아치우자 ‘포모(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빠진 투자자들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종에 주목하고 있다. 급등한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를 매수하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보니 이들 업체의 실적이 개선되면 ‘낙수효과’가 기대되는 소부장 업체에 투자를 고려하는 모습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고 해도 그 온기가 소부장 업체에 골고루 전달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대형 반도체주와 소부장 업체 간 이익 구조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단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투자는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새해 들어서만 각각 15~16% 급등했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8.02%)을 두 배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삼성전자는 14만원을 넘었고, SK하이닉스는 75만원을 넘으면서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주가를 끌어올린 동력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메모리 수요 급증과 공급 부족 우려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PC용 D램 계약 가격은 전 분기 대비 최대 60%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4분기 인상 폭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낸드플래시 계약 가격 역시 33∼38%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눈높이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맥쿼리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8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며 삼성전자 24만원, SK하이닉스 112만원이라는 파격적인 목표가를 제시했다. 씨티그룹 역시 삼성전자의 올해 영업이익이 15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며 목표가를 2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대장주들의 독주가 이어지자 투자 열기는 소부장으로 옮겨붙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CAPEX) 확대가 본격화되면 장비·소재 업체들의 수주가 직접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 소부장 기업들의 수주 공시는 이미 시작됐다. 테스는 최근 SK하이닉스와 121억원 규모의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디아이티(212억원)와 아이에스티이(23억원)도 수주 물량을 확보했다. 예스티 역시 삼성전자와 76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으며 업황 회복에 따른 낙수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강현기 DB증권 연구원은 “1월은 전통적으로 중소형주가 강세를 보인다”며 “현재 시장 참여자 기대가 반도체 업종에 있다면, 관련 중소형주가 추가적인 기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강 연구원은 한국 반도체 업종이 급등한 날 코스닥150 IT 지수가 유사한 수준으로 뛰었다는 점을 그 근거로 꼽았다.
증권가도 유망주 찾기에 분주하다. 하나증권은 SK하이닉스 증설에 따른 수혜주로 테스와 브이엠을 꼽았고, LS증권은 유니셈, 하나머티리얼즈, 코미코를 추천했다. 유진투자증권은 리노공업과 ISC를, IBK투자증권은 한솔케미칼, 원익IPS, 솔브레인, 주성엔지니어링을 각각 유망 종목으로 제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소부장 투자가 대형주를 단순히 뒤따라가는 전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대형주와 소부장은 이익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반도체 대형주는 재고 조정과 가격 상승만으로도 실적이 개선되지만, 소부장은 실제 설비투자나 생산량 확대 등이 수반되어야 매출이 발생한다. 소부장 업체는 고정 고객사를 둔 특성 상 이익률이 대폭 높아지기도 어려운 구조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업황 개선은 생산량(Q) 증가보다 가격(P) 상승이 주도하고 있다”며 “대형주는 가격 상승만으로도 이익 가시성이 확보되지만, 소부장은 실제 생산 물량이 늘어나는 것이 확인돼야 실적과 주가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수출은 강하지만, 아직 출하(Shipment)와 생산 물량은 여전히 주춤한 상태”라며 “이런 국면에서는 대규모 설비투자나 제품 믹스 변화에 민감한 후공정 분야에서 먼저 뚜렷한 반응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어 선별적인 종목 선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