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 1월 7일 15시 32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벤처투자 시장에서 ‘귀한 몸’이 되는가 싶었던 벤처캐피털(VC) 세컨더리(구주 인수) 펀드가 애물단지로 변했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VC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으면서 VC가 VC의 물건을 사주는 세컨더리 펀드가 엑시트 대안으로 주목받았지만, 최근 증시 호황으로 구주 거래 분위기가 급변한 것이다. 운용사들은 “좋은 매물은 이제 세컨더리로 오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7일 VC 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형 VC 등 세컨더리 펀드 운용사의 투자심의위원회(투심위) 개최 횟수가 급감했다. 약 1년 전인 작년 초만 해도 운용사별로 한 달에 최소 2건 이상의 구주 인수 안건이 투심위에 올랐으나, 하반기 이후 두 달에 1건도 올라오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2000억원 이상 규모의 세컨더리 펀드를 운용하는 한 VC 대표는 “세컨더리 펀드는 말 그대로 만기가 도래한 펀드의 피투자처 구주를 할인된 가격에 사들이는 펀드”라면서 “작년 초까지도 상장이 늦어지고 있는 우량 기업을 싼값에 골라잡았는데 최근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고 했다.
증시 호황이 세컨더리 펀드의 매물 확보 난항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증시 강세에 힘입어 공모주 시장으로도 자금이 몰리면서 VC들이 세컨더리 펀드로 피투자처 구주를 할인 매각하는 대신 펀드 만기를 연장해 기업공개(IPO)를 기다리겠다는 전략으로 돌아선 것이다.
당장 벤처투자 펀드의 주요 출자자(LP)들부터 ‘헐값 회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2024년까지도 연기금·공제회 등 LP들이 “일부 손실을 보더라도 현금화하라”며 VC들을 압박했지만, 지난해 중순부터 현금화 요구를 거두고 회수 성과를 기다리는 방향을 내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형 VC 심사역은 “최근에는 LP들이 먼저 상장 가능성이 있는 피투자처가 있으면 만기를 연장하라는 제안을 하고 있다”면서 “VC들이 과거 장부가 대비 30% 이상 싼값에 세컨더리로 지분을 넘겼던 것은 만기 연장이 어려웠던 탓인데, 이제는 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VC들의 엑시트 주요 창구인 코스닥시장 활성화 전망도 세컨더리 펀드가 외면받는 이유로 꼽힌다. 특히 정부가 코스닥벤처펀드의 세제 혜택 한도 확대 등 코스닥시장 활성화 정책을 꺼내 들면서 VC들은 일제히 구주 매각 조기 현금화 대신 상장 회수를 전략으로 꺼내 들었다.
세컨더리 펀드의 질적 하락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상장 가능성과 상장 후 흥행 가능성이 큰 이른바 ‘에이스’급 기업들은 세컨더리 펀드 대신 만기 연장 후 상장으로 직행하고, 세컨더리 펀드에는 사실상 자생력이 부족한 부실 자산들만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세컨더리 펀드가 늘어난 점도 악재다. 세컨더리 펀드 규모가 한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너도나도 세컨더리 펀드 조성에 나선 탓이다. 벤처투자정보센터 등에 따르면 2024년과 지난해 2년 동안에만 현재 운용 중인 전체 세컨더리 펀드의 약 24%인 20개 펀드가 신규 결성됐다.
VC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세컨더리 펀드가 가격을 정하는 ‘갑’의 위치였다면, 이제는 극소수의 우량 매물을 두고 여러 펀드가 경쟁하는 ‘을’의 처지”라면서 “당분간 상장 직전의 확실한 우량주를 선점하기 위한 프리IPO 경쟁이 세컨더리 펀드의 본질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