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초 증시 휴장기를 틈타 기업들이 불리한 정보를 뒤늦게 공개하는 이른바 ‘올빼미 공시’ 관행이 올해도 반복됐다. 특히 포스코퓨처엠, SKC 등 대형주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이 분산되는 거래소 휴장 직전이나 연휴 기간을 활용해 수조 원대 계약 규모 축소나 사업 철회 소식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정보 비대칭을 최소화해야 할 공시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30일 코스피·코스닥 시장 상장사가 제출한 공시는 총 447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60%인 268건이 정규장 마감 이후인 오후 3시 30분 이후에 게재됐다. 시장별로는 코스피가 236건 중 127건(53.8%), 코스닥이 211건 중 141건(66.8%)이 장 마감 후 공시였다.
증시 휴장일이었던 31일에는 기존 내용을 뒤집는 정정공시가 집중됐다. 이날 코스닥 시장 전체 공시 155건 가운데 77건(49.6%)이, 코스피 시장 역시 172건 중 54건(31.3%)이 정정공시에 해당했다. 투자 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가 거래가 불가능한 기간에 대거 공개된 셈이다.
주요 사례를 보면 이차전지 등 주요 대형주들의 대규모 사업 조정과 수주 실적 하향 소식이 주를 이뤘다. 포스코퓨처엠은 2022년 7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체결한 양극소재 중장기 공급계약 금액을 기존 13조7700억원에서 2조8100억원으로 약 80% 하향 조정했다. 회사 측은 “판매가격 산정 기준인 리튬 가격 급락과 전기차(EV) 시장 성장 둔화 등의 영향으로 실제 공급 금액이 계약에 미달했다”고 설명했다.
SKC도 배터리 양극재 사업 진출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2021년 9월 양극재와 음극재 사업 동시 진출을 선언했지만, 양극재 사업을 접고 음극재 사업만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1~2025년 5년간 예정됐던 5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은 약 4조4000억원으로 축소됐다.
SKC는 “전기차(EV)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이차전지 산업 전반의 투자와 생산 규모가 축소되고, 글로벌 밸류체인 경쟁이 심화됐다”며 “장기적 수익성 검토를 거쳐 투자 규모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코스피 시장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신규 시설 투자 금액을 기존 계획 대비 절반가량 축소했다고 밝혔다. 또 엑시큐어하이트론은 시장 불확실성을 이유로 홍콩 UNV 디지털 테크놀로지와의 계약 해지 소식을 공시했다. 해지 금액은 약 67억원으로, 2023년 매출액 대비 123%에 이른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대규모 계약 해지 공시가 나왔다. 스피어는 미국 글로벌 우주항공 발사 업체와 체결했던 특수합금 공급계약이 해지됐다고 공시했다. 해지 금액은 20억2350만원으로, 2024년 매출액 대비 79.11%에 달하는 규모다. 스피어 측은 “계약 상대방의 제품 운용 일정 변경에 따라 발주가 취소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거래정지 상태에 있는 KH건설과 장원테크는 상장폐지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됐다고 30일 장 마감 이후 알렸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오는 5일부터 정리매매 등 상장폐지 절차가 재개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올빼미 공시 자체가 불성실공시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3일 이상 휴장에 앞서 마지막 거래일 장 마감 이후에 나온 공시에 대해서는 재공시를 요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올빼미 공시 관행이 국내 증시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주가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악재성 정보가 거래가 불가능한 휴장기에 공개될 경우, 투자자들이 대응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시초가 급락 등 변동성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상장사들이 악재의 심리적 파급력을 낮추기 위해 장 마감 후나 연휴 직전 공시를 선택하는 전략적 행태가 여전하다”며 “최근 당국이 영문 공시 확대 등 공시 투명성 제고를 추진하고 있지만, 올빼미 공시와 같은 ‘꼼수 공시’를 실질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강제성 있는 가이드라인이 병행되어야 공시 제도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