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벤처스 김철우 대표(왼쪽), 김대현 파트너(오른쪽). /더벤처스 제공

이 기사는 2025년 12월 28일 14시 52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지난 2013년, 아직 20대였던 두 사업가가 의기투합해 중고 거래 플랫폼을 선보였다. 평일엔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고 일요일엔 카페에서 만나 사업 계획을 짰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선데이스미스(커피스미스의 이름을 땄다)’였다.

두 사람이 만든 플랫폼의 이름은 ‘셀잇’이었다. 오늘날 중고 거래 중개 업체로 잘나가는 ‘번개장터’의 전신이다. 1억원을 투자받아 시작한 셀잇은 기업가치 100억원에 카카오에 팔렸고, 이후 합병 법인 번개장터가 돼 사모펀드(PEF) 운용사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에 1500억원에 매각됐다. 지난해에는 5000억원짜리 회사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셀잇의 공동창업자인 김철우·김대현 두 사람은 현재 벤처캐피털(VC) 더벤처스의 대표이사, 파트너로 재직 중이다. 셀잇이 법인이 되자마자 1억원을 투자한 바로 그 VC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김철우 대표와 김대현 파트너를 만났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더벤처스의 ‘대(代)’를 잇는다고 했다. 창업가 출신으로 VC 더벤처스를 설립한 호창성 전 대표처럼, 그들도 창업가 출신으로서 은인과 같은 더벤처스에 합류해 후배 창업가들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더벤처스는 초기 투자 전문 VC로 잘 알려진 회사다. 중고차 거래 업체 헤이딜러의 경우 몸값이 6억원일 때 투자했는데, 현재 기업가치 1조원을 바라보며 상장을 추진 중이다. 인공지능(AI) 기반 교육 플랫폼 뤼이드에는 기업가치 10억원을 기준으로 투자했다. 마지막 펀딩 당시 기업가치는 8000억원에 달했다.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해 소개하면.

김철우 : “2005년 대학교(부산대) 공대 축구 동아리에서 선후배로 만났다. 나는 환경공학을, 김대현 파트너는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당시 나는 사업을 하고 싶어 원룸 식탁에서 혼자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었는데, 혼자 하려니 벅차더라. 그래서 제일 편한 후배인 김 파트너를 부른 것이다. 둘이 함께 리서치하고 계획서를 썼지만 그 당시 김 파트너는 취업 준비 중이었고, 대기업 면접 준비를 하고 있어서 처음엔 거절하더라.”

김대현 : “‘같이 사업하길 원하면 형의 진심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소개팅까지 해주더라. 농담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때 ‘이 사람이 진짜 나와 같이 사업을 해보려는 마음이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중고 거래 서비스 업체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김철우 : “2012년 미국의 유즈드(Used)라는 스타트업에 눈길이 갔다. 중고 물품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거래를 중개하는 서비스를 하더라. 중고 거래의 신뢰도를 높이는 한편, 번거로운 거래 과정을 사업자경험(UX)을 통해 단순화한 것이다.”

김대현 : “마침 내가 중고 거래 경험이 많았다. 대학 다닐 때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아서 중고품을 사 써보고 되팔기도 했고, 친구들의 물건도 대신 팔아줬다. 교내에서 ‘중고거래 잘하는 애’로 좀 유명했다.”

김철우 : “애플리케이션(앱) 론칭은 2013년 8월에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했고, 이듬해 2월에야 법인을 설립했다. 법인을 세운 건 더벤처스 덕이었다. 호창성 당시 대표가 투자를 하고 싶다길래 ‘내가 어떻게 하면 되냐’고 되물었더니 법인을 세우라고 하더라.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법인을 세워야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셀잇은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카카오에 성공적으로 매각됐다.

김철우 : “법인 설립하고 더벤처스로부터 투자받은 지 1년 2개월 만에 케이벤처그룹(현 카카오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됐다. 케이벤처그룹이 셀잇 지분을 51% 이상 보유한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더벤처스에서 투자받을 당시 회사 기업가치가 10억원이 채 안 됐는데, 케이벤처에 팔릴 때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상태였다(김 대표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IB 업계에 따르면 당시 셀잇의 기업가치는 100억원 수준이었다). 셀잇이 더벤처스 창사 이래 세번째로 높은 투자 수익을 가져다준 것으로 안다. 1위가 에듀테크 기업 뤼이드, 2위가 뷰티 리뷰 플랫폼 ‘글로우픽’을 운영하는 글로우데이즈, 3위가 셀잇이었다.”

―회사를 매각한 후에는 뭘 했는지.

김철우 : “경영권을 넘긴 뒤에도 지분은 계속 있었으니 셀잇에 소속돼 근무했다. 2017년 10월에는 셀잇이 네이버 산하에 있던 퀵켓과 합병해 한 회사가 됐다. 셀잇 30명, 퀵켓 40명이 합쳐졌다. 합병 법인의 이름은 ‘번개장터’로, 최대주주는 카카오였고 네이버는 지분을 정리하고 나갔다. 이후엔 나와 김대현 파트너, 퀵켓 출신 장원귀 대표가 합병 법인을 경영했다.”

―현재 번개장터의 최대주주는 사모펀드(PEF) 운용사 프랙시스파트너스인데.

김철우 : “2020년이 되자 중고 거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을 더 영위해 나갈 동력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카오 대신 우리가 직접 원매자를 찾아다녔다. 일본에 상장해 있는 중고 거래 업체를 찾아가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프랙시스를 만난 것이다(당시 프랙시스는 번개장터 경영권을 1500억원에 인수했다).”

―왜 벤처캐피털리스트가 됐나.

김철우 : “겉으로는 ‘사업보단 워크라이프밸런스(워라밸)가 좋아 보여서 VC로 왔다’고 농담했지만, 진짜 이유는 사업엔 지쳤지만 스타트업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지 않으면서도 스타트업 생태계에 남을 수 있는 방식이 ‘투자’였다. 많은 VC 중에서도 우리가 처음으로 투자받은 더벤처스에 합류하는 게 의미 있다고 판단했다.”

―더벤처스에 합류한 후 첫번째로 투자한 회사는. 창업자 출신이라는 점이 투자처 발굴을 더 용이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김철우 : “내가 처음 투자한 회사는 모아이즈라는 스타트업이었다. 인공지능(AI) 동작 분석 설루션을 통해 골프 스윙을 진단하는 ‘골프픽스’ 서비스를 영위하는 업체다.

초기 투자는 VC가 먼저 회사를 ‘찾으러 다니면’ 답이 안 나온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창업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나. 결국 ‘인바운드(스타트업이 먼저 VC에 연락해 오는 것)’ 기반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즉 초기 투자 전문 VC의 핵심은 인바운드를 더 많이 늘리는 것이다. 더벤처스는 창업자 출신이 모여있는 투자사로, 창업자의 입장과 고충을 진심으로 이해할 것이라는 신뢰를 받고 있다. 그런 신뢰가 인바운드로 이어진다."

―창업자 출신 투자자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일까.

김철우 : “창업자는 주변에 이해해 줄 사람이 거의 없다. 부모는 ‘왜 삼성 같은 대기업 안 가고 창업했냐’ 하고, 친구들은 기업에 다닌다. 결국 창업자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공동 창업자뿐이다. 우리는 그런 공동 창업자 역할을 회사 바깥에서 해줄 수 있다.”

김대현 : “우리가 직접 창업을 하고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창업가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다. 한 번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줘야 하는데 법인 통장에 돈이 몇만 원밖에 없더라. 그래서 타고 다니던 자동차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월급을 준 적이 있다. 그때 호창성 전 대표가 개인 돈을 회사에 빌려주면서 했던 말이 ‘사장이 포기하면 회사는 망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창업자 출신이기 때문에 ‘이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우리도 포트폴리오사 대표들에게 그 얘기를 종종 하고 있다.”

―창업과 초기 투자의 본질은.

김철우 : “다운사이드(하방)를 컨트롤하는 게임이 아니라, ‘크게’ 성공해야 하는 게임이다. 그래서 우리는 포트폴리오사 대표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 대신 의미 있는 시도를 하시라’고 늘 당부한다. 의미 없이 버티기만 하는 건 시간 낭비다.

초기 투자의 경우, 우리는 스스로 ‘소방관 같다’고 표현한다. 가장 빨리 들어가서 맨 마지막에 나온다는 의미다. 그렇다 보니 투자 후 기업가치(지분 희석이 없다는 전제하에)가 700~800배 성장한 회사도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