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ChatGPT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들은 연말을 맞아 ‘서학개미’ 유치 경쟁에 적극 나서고 있다. 고환율과 AI 거품 논란에도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열기는 식지 않고 있으며, 특히 2030세대의 관심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15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SEIBro)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금액은 지난해 1121억181만달러(약 165조4398억원)에서 이달 10일 기준 1676억7033만달러(약 247조3640억원)로 49% 급증했다.

해외 주식 투자에서 2030세대의 비중도 확대되고 있다. NH투자증권의 경우 해외 주식을 보유한 고객 중 51%가 2030세대였고, 삼성증권은 45%로 집계됐다. 온라인 특화 증권사의 2030 비중은 이보다 더 높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내 증권사들은 연말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해외 주식 거래 수수료를 0.07%포인트 인하하고 95% 환전 우대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올해 해외 주식을 거래하지 않은 고객에게는 최대 22달러 매수 쿠폰을, 2007년 이후 출생 자녀 명의 계좌 개설 고객과 ‘키움주식더모으기’ 신규 가입자에게는 최대 10만원 쿠폰을 지급한다.

토스증권은 미국 주식 매수 수수료를 전면 무료로 전환하고 매도 수수료를 기존 0.25%에서 0.1%로 낮췄다. 하나증권은 ‘해외 주식 왕중왕전’ 이벤트를 통해 주간 수익률 상위 고객에게 최대 2000달러 상금을 지급하며, 테슬라·엔비디아·팔란티어 등 대형주 1주 이상 매수 시 다음 날 5달러 쿠폰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는 투자자 보호를 강조한 금융당국의 기조와 배치된다. 지난 9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증권사 임원 간담회에서 “수익성보다 리스크 관리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광고를 자제하라”고 주문했다.

최근 정부의 서학개미에 대한 우려도 표출됐다. 지난달 27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젊은 층이 해외 투자를 쿨하다고 여기며 유행처럼 번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밝혔다. 서학개미 증가가 원화 약세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제기되며, 미국 금리 인하에도 원·달러 환율은 12일 기준 147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투자자들은 이런 주장에 반발한다. 직장인 길모(30)씨는 “몇 년간 해외 주식을 해왔지만 과거 환율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국민연금 등 기관의 투자 규모가 훨씬 크다”고 반박했다.

증권업계는 금융당국 기조와 투자자 수요 간 괴리에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2030세대가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미국 주식과 지수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설명이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드 머니가 상대적으로 적은 젊은 세대가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은 변동성이 큰 미국 주식 시장”이라며 “실제로 2030세대의 주식 매매 회전율은 평균보다 2~3배 정도 높다”고 했다.

해외 투자 증가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4~5년 전과 비교해보면 미국 시장으로 자금 유입이 10배 정도 늘어나긴 했지만 환율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의 매력이 크지만 국내 주식보다 더 선호된다는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